오늘 회의 일정이 달라졌다, 09:00에 급 소집된 이유

오늘 회의 일정이 달라졌다, 09:00에 급 소집된 이유

아침 9시 긴급 소집

출근했다. 8시 55분. 주차장에서 핸드폰 켰더니 메일 10통. 제목에 전부 ‘긴급’이 붙어 있다.

본부장 메일이 제일 위에. “9시 30분 전원 집합, 회의실 B” 이유는 안 썼다. 안 좋은 신호다.

커피 뽑을 시간도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PM팀 차장이랑 마주쳤다. “뭔 일이에요?” “모르겠어. 근데 분위기 심상찮아.”

책상에 가방 던지고 PC 켰다. 메일함 다시 확인. 사내 공지 하나 더 왔다. “금일 오전 경영 현안 회의 소집” 경영 현안. 이 단어 나오면 십중팔구 나쁜 뉴스다.

경쟁사 수주 뉴스

회의실 들어갔다. 본부장, 상무, 각 팀장 전부 모였다. 표정들이 다 굳어 있다.

스크린에 뉴스 기사 하나 띄워져 있다. “○○시스템즈, △△은행 차세대 시스템 수주” 추정 금액 800억.

우리가 6개월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다. 작년 11월부터 고객사 임원 미팅 돌았다. 제안서만 3번 수정했다. PM 인력 배치까지 다 해놨었다.

본부장이 입을 연다. “다들 봤지? 어제 저녁에 최종 결정 났대.” 회의실이 조용해진다.

“우리 제안가는 750억이었어. 걔네는 680억.” “기술 점수는 우리가 높았는데, 가격에서 밀렸어.” 누군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상무가 말한다. “1분기 실적 목표가 1500억인데, 이거 날아가면 700억이야.” “남은 파이프라인으로 메꿀 수 있어?”

내가 담당하는 금융권 쪽 파이프라인을 떠올린다. ○○증권 클라우드 전환, 300억. □□카드 빅데이터 플랫폼, 200억. 둘 다 경쟁 PT 전이다. 확정 아니다.

“어렵습니다. 확정된 건 200억밖에 없습니다.” 본부장 표정이 더 굳는다.

전략 재수립

회의가 2시간 넘게 갔다. 각 팀별로 파이프라인 재점검. 수주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 전부 리스트업.

금융권 팀, 공공 팀, 제조 팀 순서로 발표. 나는 금융권 담당이니까 제일 먼저 불려 나갔다.

“현재 추진 중인 건 5개입니다.” “이 중 2분기 안에 수주 가능한 건 3개.” “총 추정 금액 650억.”

상무가 묻는다. “확률은?” “○○증권은 60%, □□카드는 40%, ××생명은 30%입니다.”

본부장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기댓값으로 치면 300억 정도네.” “이걸로는 부족해. 신규 발굴 어때?”

신규 발굴. 지금 시점에서 신규 프로젝트 찾아서 수주까지 가려면 최소 6개월. 2분기는 이미 글렀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2분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발굴해도 3분기나 되겠습니다.”

회의실이 또 조용해진다. 누군가 물 마시는 소리만 들린다.

본부장이 말한다. “일단 기존 파이프라인에 올인하자.” “특히 확률 높은 프로젝트는 무조건 따내야 해.” “제안가 조정도 검토하고.”

제안가 조정. 말이 좋아 조정이지 결국 단가 깎는다는 얘기다. 마진 줄이고 인력 투입 늘리고. 수주는 하는데 남는 게 없는 구조.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는데 속은 답답하다.

경쟁사 전략 분석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책상에 앉아서 경쟁사 보도자료 찾아봤다. ○○시스템즈 홈페이지에 자랑스럽게 올라와 있다. “디지털 전환 선도 기업으로서…” 읽다가 꺼버렸다.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떻게 수주했냐다. 단가만 낮춘 게 아닐 거다. 분명 고객사 내부에 누가 있었을 거다.

전화 몇 통 돌렸다. 업계 아는 사람들한테. “야, △△은행 프로젝트 어떻게 된 거야?”

한 친구가 귀띔해준다. “CIO가 바뀌었잖아. 신임 CIO가 ○○시스템즈랑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대.” “아, 그래서…”

결국 인맥이다. 기술이고 뭐고 결정권자가 누구랑 친하냐가 제일 중요하다. SI 영업 15년 하면서 배운 진리.

우리도 그 정보 미리 알았으면 전략을 바꿨을 텐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팀원들 얼굴

오후 3시쯤 팀원들 불러 모았다. 내 밑에 대리 2명, 과장 1명. 다들 아침 회의 분위기 알고 있다.

“일단 상황은 이래.” “△△은행 건은 날아갔어. 경쟁사 먹었어.” “그래서 우리 목표가 더 높아졌어.”

대리 하나가 묻는다. “그럼 ○○증권은 무조건 따내야 하는 거네요?” “그렇지. 무조건.”

과장이 말한다. “근데 부장님, 경쟁사가 또 저가로 들어오면요?” “그때는… 우리도 가격 맞춰야지.”

팀원들 표정이 어둡다. 저가 수주하면 프로젝트 하면서 고생한다는 거 다 안다. 인력은 부족하고 일정은 빡빡하고.

“일단 최선을 다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제안서 품질 최대한 높이고, 고객사 미팅 더 자주 잡고.”

대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팀원들 돌려보내고 혼자 앉아 있다. 이 친구들 실적 못 내면 연봉 협상 때 타격 받는다. 나도 마찬가지고.

15년차 부장이 이런 상황 수습 못 하면 임원은 물 건너간다. 알면서도 답이 안 보인다.

저녁 보고

7시에 본부장실 들어갔다. 오늘 회의 후속 조치 보고.

“○○증권 PT 일정 당겼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로.” “제안서는 이번 주 안에 최종 마무리하겠습니다.”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술 제안은 괜찮아?” “PM팀이랑 협의해서 아키텍처 고도화했습니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구조로 제안하고, AI 기반 이상 탐지 시스템 추가했습니다.”

“가격은?” “일단 280억으로 제안하려고 합니다.” “우리 원가가 250억 정도니까 마진 10% 정도 나옵니다.”

본부장이 잠시 생각한다. “10%면 너무 적은데. 경쟁사가 더 낮게 들어오면?” “그때는… 260억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마진 4%로 줄어들지만 수주는 가능할 겁니다.”

“알았어. 일단 280억으로 가되, 협상 여지는 남겨둬.” “네.”

나오면서 한숨 나온다. 마진 4%면 거의 본전이다. 프로젝트 하다가 변수 하나만 터져도 적자다.

그래도 수주는 해야 한다. 실적 없으면 더 큰 문제니까.

퇴근길 생각

9시 반에 퇴근했다. 차 몰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아침에 긴급 회의 소집 메일 받았을 때부터 뭔가 꼬였다. 경쟁사 수주 뉴스 보고 본부 전체가 패닉. 파이프라인 재점검하고 전략 수정하고. 팀원들한테 압박 전달하고.

SI 영업이 원래 이렇긴 하다. 수주 못 하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 대형 프로젝트 하나가 분기 실적 좌우한다. 경쟁사 동향에 일희일비하고.

15년 하면서 이런 날이 몇 번이었나. 세어보면 손가락 모자랄 것 같다.

그래도 계속 한다. 집에 가면 아내랑 애들 있고. 월급 나오고 보너스 나오고. 임원 되면 스톡옵션도 나오고.

신호등에 걸렸다. 옆 차선 보니까 택시 기사가 하품하고 있다. 저 사람도 오늘 하루 고생했겠지.

다시 출발한다. 집까지 30분.

내일 아침 되면 또 출근한다. 메일함 열고 일정 확인하고. 고객사 미팅 가고 제안서 검토하고.

그게 내 일이다. 15년째 하는 일.


내일은 ○○증권 실무자 미팅이다. 준비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