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SI 영업했는데, 임원 될 가능성은 0%인가
- 05 Dec, 2025
15년 차, 부장
15년 했다. SI 영업 15년.
부장이다. 연봉 9500만원. 인센티브 포함하면 억 넘는다.
대형 프로젝트 수주하면 몇천 더 받는다.
근데 임원은 못 될 것 같다. 아니, 확신한다.
0%다.
오늘도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나 여기서 끝인가?”
엘리베이터에서 상무 한 분을 봤다.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분이 말했다. “어, 부장. 요새 수주 어때?”
“노력 중입니다.”
“그래, 화이팅.”
끝이다. 그게 전부다.

임원 되는 사람들
우리 회사 임원 되는 패턴이 있다.
첫째, 창업 멤버 자녀.
둘째, 대형 프로젝트 10개 이상 수주한 사람.
셋째, 정말 운 좋은 사람.
나는 셋 다 아니다.
창업 멤버 자녀는 당연히 아니다. 부모님은 공무원이셨다.
대형 프로젝트 10개? 나는 7개 수주했다. 15년 동안.
각각 300억, 250억, 180억, 150억, 140억, 120억, 100억.
합치면 1240억이다. 나쁘지 않다.
근데 임원 된 사람들 보면 2000억은 기본이다.
한 명은 차세대 프로젝트 하나로 500억 수주했다. 그걸로 상무 됐다.
나는? 100억짜리 7개 쪼개서 모았다.
숫자는 비슷해도 급이 다르다. 이게 현실이다.
운은 더 웃긴다. 작년에 상무 된 선배 있다.
프로젝트 3개 수주했다. 금액은 내 절반이다.
근데 그 선배, 고객사 부사장이랑 대학 동창이다.
그 라인으로 계속 프로젝트 따냈다. 그게 운이다.
나는? 고객사 라인 만들려고 15년 동안 술 처먹었다.
간은 부었고, 인맥은 넓어졌다. 근데 그게 임원 티켓은 아니다.
오늘 회의
오전에 영업본부 전략 회의 있었다.
본부장이 말했다. “올해 목표 달성률 78%입니다. 4분기에 만회해야 합니다.”
다들 고개 끄덕인다. 나도 끄덕였다.
“각 부장님들, 파이프라인 점검 부탁드립니다.”
내 차례 왔다. “금융권 쪽은 현재 5개 프로젝트 제안 중입니다. 총 450억 규모입니다.”
“수주 가능성은?”
“2개는 80% 이상입니다. 나머지는 경쟁 상황 보면서…”
“알겠습니다. 꼭 따세요.”
“예.”
회의 끝나고 복도에서 본부장이랑 마주쳤다.
“부장, 요새 고생 많으시죠?”
“괜찮습니다.”
“올해 실적 좋으면 임원 추천 고려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고려해볼게요. 이 말 5년째 듣는다.
작년에도 들었다. 재작년에도 들었다.
근데 임원 추천은 안 왔다. 올해도 안 올 거다.
왜? 자리가 없다.
우리 회사 상무 정원 20명이다. 현재 19명이다.
한 자리 남았다. 근데 그 자리는 이미 정해졌다.
클라우드 사업부 부장이 갈 거다. 걔는 400억짜리 프로젝트 수주했다.
나는? 줄 서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숫자 계산
오늘 점심 먹으면서 계산해봤다.
내 연봉 9500만원. 세후 7천 정도.
인센티브 평균 2천.
합치면 연간 9천만원 가져간다.
상무 되면 연봉 1억 5천이다. 인센티브 포함하면 2억.
차이가 1억이다.
1억이 크다. 아파트 한 채 값이다.
근데 상무 되려면? 최소 3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아니, 5년일 수도 있다. 아니, 평생 안 될 수도 있다.
그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장으로 계속 일하면서 인센티브 최대한 받는 거다.
올해 목표는 600억 수주다. 현재 280억 수주했다.
남은 건 320억이다. 4분기에 다 따야 한다.
따면 인센티브 3천 나온다. 못 따면 1천도 없다.
이게 내 현실이다. 임원 꿈꾸기보다 현실적이다.
후배들
후배 부장이 한 명 있다. 나보다 5년 후배다.
걘 나보다 잘 나간다. 작년에 500억 프로젝트 수주했다.
오늘 복도에서 마주쳤다. “형, 요새 어때요?”
“그냥. 너는?”
“저는 이번에 공공 쪽 대형 건 하나 노리고 있어요.”
“규모는?”
“800억이요.”
“크네.”
“네, 이거 따면 상무 될 것 같아요.”
“그래, 잘해봐.”
“고맙습니다, 형.”
걔는 상무 될 거다. 확신한다.
나이도 어리고, 실적도 좋고, 타이밍도 맞다.
나는? 타이밍 놓쳤다.
10년 전에 500억짜리 프로젝트 하나 따야 했다.
근데 그땐 그런 프로젝트가 없었다. 시장이 달랐다.
지금은? 대형 프로젝트 많다. 클라우드, DX, AI.
근데 그건 후배들 차지다. 나는 이미 금융권에 묶여 있다.
금융권은 안정적이다. 매년 100억씩은 나온다.
근데 임원 되려면? 한 방이 필요하다. 500억짜리 한 방.
그게 없다. 그래서 끝이다.

아내한테 말했다
어제 집에 들어갔다. 밤 10시였다.
아내가 물었다. “임원 승진 이야기 들었어요?”
“응.”
“언제쯤 될 것 같아요?”
“모르겠어.”
“올해는요?”
“아니.”
“그럼 내년은요?”
“그것도 모르겠어. 아마 안 될 거야.”
“왜요? 당신 15년 했잖아요.”
“15년 했다고 다 되는 거 아니야.”
”…”
아내가 조용해졌다. 뭐라 말 안 했다.
나도 말 안 했다. 설명해봤자 이해 못 한다.
아내는 SI 업계 모른다. 회사 정치 모른다.
자리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모른다.
그냥 남편이 15년 일했으니까 승진하겠거니 생각한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15년은 기본이다.
20년 해도 부장인 사람 많다. 25년 해도 안 되는 사람 있다.
나는 아마 그쪽일 거다.
점심 메뉴
오늘 점심은 된장찌개였다.
PM 한 명이랑 같이 먹었다. 30대 중반, 경력 8년.
걔가 물었다. “부장님, 임원 되시면 뭐 하고 싶으세요?”
“글쎄.”
“저는 나중에 임원 되면 해외 출장 많이 가고 싶어요.”
“그래? 임원 되면 출장 더 많아.”
“그래도 멋있잖아요.”
“멋있긴. 피곤해.”
“부장님은 임원 안 되고 싶으세요?”
“되면 좋지. 근데 안 될 것 같아.”
“왜요? 부장님 실적 좋으시잖아요.”
“실적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그럼 뭐가 필요한데요?”
“운이랑 타이밍. 그리고 라인.”
“아…”
걔도 이해했다. 표정이 굳었다.
8년 차면 이제 알 만하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도 8년 차 때 알았다. 근데 인정 안 했다.
“나는 실적으로 승부하면 돼.” 그렇게 생각했다.
15년 하고 나니까 안다. 실적은 기본이다.
그 위에 정치가 있고, 라인이 있고, 운이 있다.
나는 정치 못 한다. 라인도 없다. 운도 없다.
그래서 부장이다. 그리고 계속 부장일 거다.
경쟁사 동기
대학 동기 한 명이 경쟁사에 있다.
걔도 SI 영업이다. 나랑 같은 15년 차다.
작년에 전무 됐다. 우리 회사로 치면 상무 위다.
한 달 전에 술 먹었다. “너 어떻게 전무 됐어?”
“운 좋았지 뭐.”
“무슨 운?”
“회장님이랑 같은 고향이야.”
“그게 운이야?”
“응. 그거 하나로 10년 밀렸어. 그게 운이지.”
”…”
걔는 실적 나보다 별로다. 프로젝트 5개 수주했다.
총 700억이다. 나는 1240억이다.
근데 걔는 전무고, 나는 부장이다.
차이는? 회장이랑 같은 고향.
이게 SI 영업이다. 이게 대기업이다.
실력보다 라인이다. 실적보다 인맥이다.
나는 그게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다.
딸이 물었다
지난주 주말에 딸이 물었다. 중학교 2학년이다.
“아빠,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에요?”
“응, 부장이야.”
“부장 위에는 뭐가 있어요?”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아빠는 언제 상무 돼요?”
“모르겠어.”
“왜요?”
“어려워서.”
“아빠 일 열심히 하잖아요.”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야.”
“그럼 뭐가 필요한데요?”
“운.”
딸이 이해 못 하는 표情이었다.
나도 20년 전에는 이해 못 했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아니다. 열심히는 기본이다.
거기에 운이랑 타이밍이랑 정치가 더해져야 한다.
나는 열심히만 했다. 나머지는 못 했다.
그래서 딸한테 상무 된다고 말 못 한다.
거짓말하기 싫다.
퇴근길
오늘 퇴근은 9시였다.
차 타고 집에 가면서 생각했다.
“나 15년 동안 뭐 한 거지?”
프로젝트 7개 수주했다. 1240억 매출 올렸다.
회사 이익에 기여했다. 부서 실적 만들었다.
근데 임원은 못 된다.
왜? 자리가 없다. 라인이 없다. 타이밍 놓쳤다.
그럼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니다. 잘못한 거 없다.
그냥 이게 현실이다. 대기업 영업이 이렇다.
부장까지는 실력으로 온다. 그 위는 운이다.
나는 실력 있다. 근데 운은 없다.
그래서 부장이다. 앞으로도 부장일 거다.
받아들였다. 오늘 퇴근길에.
“나는 임원 안 된다. 그리고 괜찮다.”
연봉 9500만원이다. 인센티브 받으면 억 넘는다.
한국에서 상위 5% 안에 든다.
못 사는 거 아니다. 딸 대학 보낼 수 있다.
아파트도 있다. 차도 있다.
임원 못 돼도 산다. 그렇게 살 거다.
내일 일정
내일 오전 10시에 고객사 미팅 있다.
은행 IT 담당 임원이랑 만난다.
클라우드 전환 프로젝트 제안한다. 350억짜리다.
오후에는 내부 보고 있다. 본부장한테 보고한다.
“4분기 수주 목표 달성 방안” 보고한다.
저녁에는 PM들이랑 회식이다. 삼겹살 먹는다.
평범한 하루다. 15년 동안 반복한 하루다.
임원 되든 안 되든, 내일도 이렇게 산다.
프로젝트 수주하고, 보고하고, 회식한다.
이게 SI 영업이다. 이게 내 인생이다.
나쁘지 않다. 임원 못 돼도 나쁘지 않다.
그냥 0%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오늘 주어진 일 하면 된다.
임원은 꿈이었다. 이제는 현실을 산다. 부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