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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Dec, 2025
경쟁사가 나보다 30% 싸게 들어왔을 때의 허탈감
금요일 오후 3시 회의실에 들어갔다. 고객사 IT본부장이 서류를 밀었다. "이거 봤어요?" 경쟁사 제안서다. 펼쳤다. 62억. 우리는 89억 썼다. 30% 차이다. 말이 안 나왔다. "스펙은 똑같던데요." 본부장이 말했다. 웃지 않았다.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했다. PM한테. "스펙 확인해. 경쟁사꺼." "확인했습니다. 거의 동일합니다." "거의?" "DB 이중화 빠졌고, 백업 주기가 주 1회예요. 우린 일 1회." "그게 27억 차이냐?" "...아닙니다." 끊었다. 토요일 오전 출근했다. 팀원 셋 불렀다. 화이트보드에 썼다. 62억 vs 89억. "어떻게 할 건데?" 아무도 말 안 했다. 결국 내가 말했다. "마진 깎자." "얼마요?" "15%에서 8%로." 팀원이 계산기 두드렸다. "그럼 74억입니다." "여전히 비싸네." "...네."경쟁사를 찾아봤다. 중견 SI다. 작년에 대형 프로젝트 하나 말아먹었다. 그래서 저렇게 싸게 내는 거다. 숨통이 막혔나 보다. 문제는 고객사는 그거 모른다는 거다. 62억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커피 마셨다. 네 번째다. 고객사 재방문 월요일 아침. 다시 갔다. 이번엔 CIO를 만났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노트북 펼쳤다. 준비한 자료다. "경쟁사 제안, 세 가지 리스크 있습니다." 첫째, DB 이중화 없으면 장애 시 복구 불가능. 둘째, 백업 주기 주 1회면 데이터 유실 리스크. 셋째, 해당 업체 작년 프로젝트 납기 2개월 지연. CIO가 물었다. "확인된 거예요?" "레퍼런스 체크 가능합니다." "가격은?" "74억까지 가능합니다." "여전히 비싸네요." "...네."CIO가 말했다. "이거 아세요? 경영진은 숫자만 봐요." "압니다." "62억이랑 74억. 12억 차이예요." "기술 가치는요?" "그거 설명하려면 보고서 20장 써야 해요. 경영진은 안 읽어요." 할 말이 없었다. 가격 재조정 회사 돌아와서 전무한테 보고했다. "74억도 안 먹힙니다." "얼마 원하는데?" "65억 정도요." 전무가 계산했다. "그럼 마진 3%야." "...네." "프로젝트 터지면?" "그럼 적자입니다." 전무가 담배 꺼냈다. 회의실인데. "이거 수주 못 하면 분기 실적 어떻게 돼?" "망합니다." "수주해서 터지면?" "그것도 망합니다." 전무가 웃었다. 웃긴 게 아니었다. "SI가 다 이 모양이야." 결국 결정했다. 65억. 마진 3%. 줄타기다. 재제안 수요일에 다시 들어갔다. CIO한테 65억 제시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경쟁사보다 비싸네요." "3억입니다. 기술 리스크 보험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CIO가 고민했다. 길게. "검토하겠습니다." 나왔다. 복도에서 경쟁사 영업 만났다. 마주쳤다. 눈인사했다. 서로 웃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도 마진 3%일 거다. 둘 다 못 먹고 사는 장사다. 금요일 저녁 전화 왔다. IT본부장이었다. "결정됐습니다." 심장 뛰었다. "우리 쪽입니다." "...감사합니다." "CIO가 결정했어요. 리스크 관리 때문에." "최선 다하겠습니다." 끊었다. 팀원들한테 말했다. "수주됐다." 박수 쳤다. 크게 안 쳤다. 다들 안다. 마진 3%라는 거. 프로젝트 시작하면 지옥이라는 거. 그래도 수주는 수주다. 회식 갔다. 고깃집. 고기 구우면서 생각했다. 15년 했는데 아직도 가격으로 싸운다. 기술 가치? 그런 거 없다. 결국 숫자 싸움이다. PM이 물었다. "부장님, 언제까지 이러실 거예요?" "임원 되기 전까진." "되면요?" "그땐 내가 전무 괴롭히겠지." 다들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월요일 아침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 준비했다. 65억짜리 프로젝트. 마진 3%. 실수 하나 못 한다. 일정 지연되면 페널티 물어야 한다. 범위 추가되면 마진 날아간다. 아키텍트한테 말했다. "이거 칼같이 해야 돼." "압니다." "범위 관리 철저히." "네." "고객사 요구사항 추가되면 바로 보고." "알겠습니다." 회의 끝나고 혼자 남았다. 창밖 봤다. 서울 도심이다. 저기 어딘가에 경쟁사 영업도 앉아 있겠지. 62억 제안하고 떨어진 거 분해하면서. 우린 65억에 수주했지만 마진 3%. 누가 이긴 건지 모르겠다. 허탈감의 정체 15년 했다. 대형 프로젝트 수십 개 했다. 그런데 아직도 가격으로 경쟁한다. '우리 기술력이', '우리 레퍼런스가' 말해도 소용없다. 결국 마지막은 가격이다. 62억이냐 65억이냐. 3억 차이로 수주가 갈린다. 그 3억이 우리 기술 가치 전부다. 허탈하다. 경쟁사가 30% 싸게 들어올 때마다 생각한다. SI 시장이 죽어간다고. 마진율 10%가 정상인데 3%로 따낸다. 이러다 다 죽는다. 그런데 안 따내면 당장 분기 실적이 없다. 그래서 따낸다. 3% 마진으로. 악순환이다. 아내한테 말했다. 저녁에. "오늘 대형 프로젝트 수주했어." "축하해요. 보너스 나와요?" "글쎄. 프로젝트 성공하면." "성공하겠죠?" "...그래야지." 말 안 했다. 마진 3%라는 거. 프로젝트 터질 확률 반반이라는 거. 그냥 웃었다.경쟁사 62억, 우리 65억. 3억 차이가 기술 가치 전부였다. 허탈하지만 수주는 수주다. 이제 마진 3%로 프로젝트 성공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