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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Dec, 2025
직원 5000명 대형 SI회사의 내부 보고, 무엇을 어디까지 숨겨야 할까
직원 5000명 대형 SI회사의 내부 보고, 무엇을 어디까지 숨겨야 할까 오늘 저녁 7시, 경영진 보고 출근했다. 오늘 저녁 경영진 보고다. 월요일 아침부터 속이 쓰리다. 보고 자료 준비는 금요일에 끝냈다. 하지만 주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A 프로젝트 일정 지연 건을 어떻게 포장할지. B 프로젝트 추가 투입 인력을 어떻게 설명할지. 15년 했다. 이런 보고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력이 쌓일수록 더 조심스럽다. 직원 5000명 회사다. 영업본부만 300명이다. 경영진 보고에서 밀리면 다음 분기 예산이 깎인다. 예산이 깎이면 대형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 진다. 그래서 보고는 전쟁이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포장할지. 이게 15년 차 부장의 생존 기술이다.성공 프로젝트는 최대한 부각 C 프로젝트는 대박이었다. 금융권 차세대 시스템 구축. 80억짜리. 계획보다 2주 일찍 오픈했다. 고객사 만족도도 높다. 이런 프로젝트는 최대한 부각한다. 보고서 첫 장에 배치한다. "전략적 성과" 섹션에 넣는다. 핵심은 숫자다. "일정 준수율 105%" "고객사 만족도 9.2/10" "예산 대비 마진율 18%"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준다. 경영진은 숫자를 좋아한다. 특히 긍정적인 숫자를. 그리고 스토리를 붙인다. "고객사 CIO께서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경쟁사 대비 기술력 우위를 확인했습니다" "후속 프로젝트 수주 가능성 80%입니다"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 성공한 프로젝트를 미래 파이프라인과 연결한다. 과거 성과가 아니라 미래 기회로 포장한다. 경영진은 미래를 산다. 과거는 관심 없다. 다음 분기 매출이 중요하다. C 프로젝트 보고 슬라이드는 3장이다. 원래 1장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3장으로 늘렸다. 좋은 소식은 길게 말해야 한다.위험한 프로젝트는 이렇게 보고한다 문제는 D 프로젝트다. 공공기관 클라우드 전환. 120억짜리. 일정이 3주 밀렸다. 인력이 20% 더 필요하다. 마진율이 계획 대비 5% 낮아진다. 이걸 그대로 보고하면? "관리 능력 부족"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다음 분기 인센티브가 날아간다. 그래서 포장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된다. 첫 번째, 문제를 희석한다. "일부 일정 조정"이라고 표현한다. "지연"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두 번째, 외부 요인을 강조한다. "고객사 요구사항 변경으로 인한 스코프 조정" "보안 규정 강화에 따른 검수 절차 추가"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랬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 내부 관리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하지 않는다. 세 번째, 해결책을 먼저 제시한다. "이미 추가 인력 배치 완료" "고객사와 조정된 일정 합의 완료"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 강화 중" 문제보다 해결책을 더 강조한다. 경영진이 원하는 건 문제 인식이 아니다. 통제 가능하다는 확신이다. 네 번째, 숫자를 조심스럽게 쓴다. "일정 조정: 약 2~3주" "추가 투입 인력: 소폭 증가" 구체적인 숫자는 나중에 무기가 된다. "3주라고 했는데 왜 4주냐" 이런 추궁을 피하려면 애매하게 말한다. D 프로젝트 보고 슬라이드는 1장이다. 원래는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짧게 끊는다. 나쁜 소식은 빨리 지나가야 한다.절대 숨기면 안 되는 것들 어디까지 숨겨야 할까? 15년 경력의 결론은 이거다. "숨기지 말고, 포장하라" 완전히 숨기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첫째, 계약상 패널티 리스크. 이건 숨겨도 나중에 터진다. 재무팀이 다 안다. 경영진한테 직접 보고 올라간다. 그러니 먼저 말한다. "현재 패널티 가능성 20%, 대응 방안 수립 완료" 이렇게 말하면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둘째, 고객사 임원 불만. 이것도 숨기면 큰일 난다. 고객사 임원이 우리 경영진한테 직접 전화한다. 그러면 내 목이 날아간다. 차라리 먼저 보고한다. "고객사 일부 우려 사항 있음, 주간 단위 소통 강화 중"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 셋째, 경쟁사 역전 가능성. 특히 후속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이건 숨겨도 영업본부장이 다 안다. 시장이 좁다. 다들 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한다. "경쟁 심화, 차별화 전략 필요" 그리고 우리만의 강점을 부각한다. 숨기는 것과 포장하는 것은 다르다. 숨기면 신뢰를 잃는다. 포장하면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보고 순서가 생존을 결정한다 보고 자료 순서를 정했다. 이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1페이지: 전체 요약 (긍정 위주) 2-4페이지: 성공 프로젝트 (C 프로젝트) 5페이지: 진행 중 프로젝트 현황 (D 프로젝트 포함, 간략하게) 6페이지: 신규 수주 파이프라인 (미래 기회) 7페이지: 차기 전략 방향 (긍정 마무리) 이 구조에는 심리학이 있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1페이지에서 긍정적 분위기를 만든다. "전년 대비 매출 15% 증가" "고객사 만족도 역대 최고" 그다음 성공 사례로 기세를 탄다. 경영진 표정이 밝아진다. 이때가 중요하다. 5페이지에서 문제를 살짝 언급한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아, 그래도 전체적으로 잘하고 있네" 이런 느낌을 받는다. 6페이지에서 다시 미래로 시선을 돌린다. "다음 분기 수주 목표 200억" "대형 프로젝트 3건 제안 준비 중" 마지막은 항상 긍정으로 끝낸다. "시장 리더십 강화" "고객 중심 전략 지속" 이런 표현들은 공허하다. 하지만 보고 마무리에는 필요하다. 순서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문제부터 말하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다음에 좋은 소식을 말해도 효과가 반감된다. 사람은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을 기억한다. 중간은 잘 기억 못 한다. 이걸 이용한다. 질의응답이 진짜 승부처 보고는 30분이다. 발표는 20분이다. 질의응답이 10분이다. 진짜 승부는 질의응답이다. 예상 질문을 미리 준비했다. 15년 경력이면 경영진 질문 패턴을 안다. "D 프로젝트 마진율 회복 가능한가?" "추가 투입 인력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고객사 추가 요구사항이 또 나오면?" 각 질문마다 답변을 준비했다. 핵심은 3가지다. 첫째, 짧게 답한다. "네, 가능합니다. 3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길게 설명하면 변명처럼 들린다. 둘째, 구체적 액션을 말한다. "이미 고객사와 스코프 프리징 합의했습니다" "주간 단위 리스크 모니터링 중입니다" 셋째, 자신감을 보인다. 목소리 톤이 중요하다. 눈을 피하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질문은 이거다. "이 프로젝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이 질문이 나오면 끝이다. 책임 소재를 묻는 순간, 이미 실패로 인식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질문이 안 나오게 해야 한다. 미리 통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다. "관리 중"이라는 단어를 계속 강조한다. 질의응답 시간이 3분이면 성공이다. 질문이 별로 없다는 건 큰 이슈가 없다는 뜻이다. 질의응답이 15분 넘어가면 위험하다. 계속 캐묻는다는 건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고 끝나고 진짜 시작 보고가 끝났다. 저녁 8시 30분이다. 경영진 표정을 읽는다. CFO는 무표정이었다. 별 관심 없다는 뜻이다. 나쁘지 않다. 영업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라고 했다. 이 정도면 합격이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됐어요?" "괜찮았어. D 프로젝트 건은 넘어갔어" 팀원들 얼굴이 밝아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D 프로젝트 일정 지연을 보고했다.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이제 정말로 관리해야 한다. 다음 달 보고에서는 개선됐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보고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거짓말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보고 끝나고가 더 바쁘다. PM한테 전화한다. "D 프로젝트 일정, 반드시 맞춰" 고객사 담당자한테도 연락한다. "다음 주 미팅 한 번 하시죠" 보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달 뒤 또 한다. 3개월 뒤 또 한다. 이번에 포장한 내용들이 다음에는 검증된다. "지난번에 해결 중이라고 했는데?"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래서 보고는 약속이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해야 한다. 밤 10시에 퇴근한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생각한다. 다음 달 보고 자료는 어떻게 만들지. 15년 차의 솔직한 고민 술 한잔 마시고 싶다. 하지만 내일 아침 미팅이 있다. 15년 했다. 이런 보고를 수없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된다. 가끔 생각한다. 왜 이렇게까지 포장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나. "D 프로젝트 망했습니다" "관리 못 했습니다" "인력 부족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음 날 인사팀에서 연락 온다. 직원 5000명 회사다. 나 대신할 사람은 많다. 영업본부에만 300명이다. 부장급 10명이 내 자리를 노린다. 차장급은 20명이 대기 중이다. 살아남으려면 성과를 내야 한다. 성과가 안 나오면 포장이라도 해야 한다. 포장도 못 하면 도태된다. 이게 대기업 영업의 현실이다. 이게 SI 업계의 생존법이다. 집에 도착했다. 밤 11시다. 아내는 자고 있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또 출근한다. 다음 달 보고 자료 준비해야 한다. 숨기는 게 아니다. 포장하는 거다. 이게 15년 차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게 내가 연봉 9500만원 받는 이유다.내일은 또 다른 전쟁이다. 하지만 오늘은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