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전략 수립, 혼자 하기엔 너무 복잡해졌다

수주 전략 수립, 혼자 하기엔 너무 복잡해졌다

수주 전략 수립, 혼자 하기엔 너무 복잡해졌다

15년 전엔 달랐다

오늘 오후 내내 제안 전략 회의였다. 머리 아프다.

15년 전, 내가 주임이던 시절엔 단순했다. 고객사 팀장이랑 친하면 됐다. 프로젝트 나온다고 하면 사양서 보고, 견적 뽑고, 제안서 쓰고. 그게 전부였다.

지금?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아침에 본부장이 불렀다. “이번 A은행 차세대, 어떻게 볼 거야?” 나도 모르겠다고 말할 순 없다. 15년차 부장인데.

“클라우드 네이티브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고객사 내부 보안팀이 반대할 가능성이…”

본부장이 끊었다. “경쟁사는?”

“B사가 최근 C은행 수주했습니다. 같은 아키텍처로 올 겁니다.”

“우리 차별점은?”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오후 회의는 6명이 모였다. 나, PM 2명, 아키텍트 1명, 기술영업 1명, 마케팅 1명.

예전엔 나랑 PM만 모여서 30분이면 끝났다. 지금은 2시간 회의해도 결론이 안 난다.

PM이 물었다. “MSA 구조로 갈까요, 모놀리틱 전환할까요?”

아키텍트가 답했다. “고객사 운영 역량 고려하면 모놀리틱이 안전합니다. 하지만 RFP엔 MSA라고 나와 있어요.”

기술영업이 끼어들었다. “경쟁사가 MSA로 제안하면 우린 탈락입니다.”

마케팅이 추가했다. “시장 트렌드는 완전히 MSA입니다. 고객사 CIO도 관심 있다고 들었어요.”

나는 메모만 했다. 뭐라고 결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아키텍트한테 물었다. “솔직히 뭐가 맞아?”

“둘 다 맞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젠장. 이게 답이냐.

10년 전엔 기술은 PM이 알아서 했다. 나는 고객사 관계만 챙기면 됐다. 지금은 내가 기술도 알아야 한다. CIO가 “컨테이너 오케스트레이션 어떻게 볼래요?” 물어보는데 못 알아들으면 끝이다.

고객사 정치는 더 복잡해졌다

회의 끝나고 고객사 IT 담당 상무한테 전화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상무님, 이번 프로젝트 어떻게 보세요?”

“글쎄, 우리도 고민이야. CIO는 클라우드 하자는데, 보안팀은 반대하고. 운영팀은 인력 부족하다고 난리고.”

“메인은 누구세요?”

“CIO 의중이 제일 중요하지. 근데 감사팀이 워낙 까다로워서…”

전화 끊고 한숨 나왔다.

예전엔 단순했다. IT 담당 임원 한 명만 챙기면 됐다. 결정권자가 명확했다.

지금은? CIO, CISO, CDO 따로 있다. 디지털전략본부, IT본부, 보안본부 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한쪽 편들면 다른 쪽이 반대한다.

지난달 D카드사 프로젝트가 그랬다. IT 본부장이랑 다 얘기 됐었다. 근데 디지털전략본부에서 “우리 의견 안 들었다”며 뒤집었다. 3개월 준비한 제안서가 날아갔다.

그 뒤로 나는 관련 부서 전부 돌아다닌다. 한 부서당 2~3번씩 만난다. 시간이 너무 든다.

오늘도 내일 E증권 보안팀장 만나기로 했다. 프로젝트 결정권자도 아니다. 근데 안 만나면 나중에 반대 의견 낸다. 그럼 프로젝트 터진다.

밤 9시에 F생명 디지털전략팀 차장이랑 저녁 약속 있다. 월요일 저녁인데. 가야 한다. 안 가면 경쟁사가 간다.

경쟁사 분석도 일이 됐다

예전엔 경쟁사가 뻔했다. 대형 SI 3~4곳. 우리끼리 돌아가며 수주했다. 단가도 비슷했다.

지금은 경쟁사가 10곳이 넘는다. 대형 SI, 중형 SI, 외산 컨설팅펌, 클라우드 사업자, 스타트업까지.

각자 강점이 다르다. 단가도 천차만별이다.

지난주 G은행 프로젝트. 우리는 150억에 제안했다. 경쟁사 중 한 곳이 90억에 냈다. 물론 범위를 줄였겠지. 근데 고객사는 “왜 우리는 비싸냐”고 묻는다.

설명하기 어렵다. “범위가 다릅니다” 말해도 안 믿는다. “너네가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냐” 나온다.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한테 경쟁사 자료 받았다. A4 용지 30장이다. 각 경쟁사별 최근 수주 이력, 강점, 단가 전략, 주요 파트너사까지.

읽다가 머리 아팠다. 이거 다 외워야 하나.

PM이 물어봤다. “H사가 이번에 AWS랑 파트너십 맺었다던데, 우린 어떡하죠?”

모르겠다. 우리도 AWS 파트너다. 근데 H사만큼 레퍼런스가 없다.

기술영업이 제안했다. “Azure로 제안하는 건 어떨까요? 경쟁 피하는 거죠.”

그럼 고객사가 AWS 원하면? 또 탈락이다.

변수가 너무 많다. 하나 결정하면 다른 게 문제 생긴다.

기술 트렌드는 따라가기도 벅차다

저녁 먹고 집에 왔다. 11시다.

노트북 켜서 이메일 확인했다. 기술영업팀에서 보낸 자료다. “2025 금융권 IT 트렌드 보고서”. PDF 80페이지.

읽어야 한다. 내일 본부장이 물어볼 수 있다.

5페이지 읽다가 포기했다. 모르는 단어 투성이다. “제너레이티브 AI 거버넌스”, “온프레미스-클라우드 하이브리드 아키텍처”, “제로 트러스트 보안”.

10년 전엔 몰라도 됐다. “ERP 구축”, “전자결재 시스템”, “데이터웨어하우스”. 이 정도만 알면 됐다.

지금은 매년 새로운 게 나온다. 작년엔 메타버스였다. 올해는 생성형 AI다. 내년엔 또 뭐가 나올까.

고객사 CIO들은 다 안다. 세미나 다니고, 스터디 하고, 외부 자문 받는다. 나한테 물어보면 대답해야 한다.

지난주 I저축은행 CIO가 물었다. “생성형 AI로 고객센터 자동화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다만 금융권 규제를…” 얼버무렸다.

CIO가 날카롭게 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요?”

대답 못 했다. 모른다.

회의 끝나고 기술영업한테 물어봤다. 한 시간 설명 들었다. 이해는 했다. 근데 내일이면 까먹을 것 같다.

예전엔 영업은 관계였다. 지금은 영업도 기술이다. 기술 모르면 관계도 소용없다.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온다

주말이다. 오전 10시인데 침대에 누워 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골프 안 가?”

“취소했어. 피곤해.”

“무슨 일 있어?”

설명하기 귀찮다. “그냥 일 복잡해.”

사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J캐피탈 제안 전략 보고해야 한다. 본부장한테. 근데 아직 방향을 못 잡았다.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기술: 클라우드냐, 온프레미스냐. MSA냐, 모놀리틱이냐.

고객사: CIO 의중은 뭐냐. IT본부랑 디지털본부 관계는 어떠냐.

경쟁사: 누가 들어오냐. 단가는 얼마로 낼 것 같으냐.

마진: 우리 목표 마진율은 15%다. 근데 경쟁 치열하면 10% 밑으로 내려간다.

일정: 고객사는 6개월 안에 오픈하자는데 가능하냐.

팀 역량: 우리 PM들이 이 기술 스택 해본 적 있냐.

파트너사: 어느 밴더랑 같이 갈 거냐.

하나하나 따지면 답이 안 나온다. 결정하면 다른 게 걸린다.

10년 전엔 내가 결정했다. 지금은 결정을 못 하겠다. 변수가 너무 많다.

오후에 PM한테 전화했다. “K 팀장, 다음 주 화요일 보고 어떻게 하지?”

“글쎄요. 저도 고민 중입니다.”

“기술적으로 뭐가 나아?”

“그게… 고객사 요구사항이 애매해서요. 명확하지 않아요.”

“그럼 고객사 다시 물어봐야 하나?”

“물어봐도 명확한 답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저번에도 그랬잖아요.”

전화 끊었다. 답답하다.

혼자 하던 시절이 그립다. 복잡해도 내 머릿속에서 정리됐다. 지금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해서 커피 마셨다.

회의실에서 팀원들이랑 모였다. “이번 주 전략 회의 하자.”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J캐피탈 프로젝트 변수들.

  • 기술 선택지 3가지
  • 고객사 의사결정자 5명
  • 경쟁사 4곳
  • 파트너사 후보 3곳
  • 마진율 시나리오 3가지

변수만 18개다. 조합하면 수백 가지 경우의 수다.

PM이 말했다. “이거 하나하나 따지면 한 달 걸립니다.”

맞다. 근데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다.

아키텍트가 제안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떨까요?”

“뭐가 우선이야?”

“그게…” 말을 흐렸다.

다들 모른다. 나도 모른다.

예전엔 감으로 했다. 15년 경험으로 “이게 맞겠지” 결정했다. 틀릴 때도 있었지만 맞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감이 안 선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감이 무뎌졌다.

회의 2시간 하고 결론 못 냈다. “내일 다시 모이자.”

저녁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생각했다.

이제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프로세스. 변수들을 구조화하고, 우선순위 매기고, 시나리오 분석하는 방법론.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배운 적이 없다. 15년간 감으로만 해왔다.

다른 부장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옆 팀 부장한테 물어봤다.

“나도 힘들어. 요즘 프로젝트 너무 복잡해.”

“그럼 어떻게 해?”

“그냥… 최선을 다해. 틀리면 틀린 거지 뭐.”

위로가 안 됐다.

조직도 같이 힘들어한다

화요일 오전. 본부장 보고 들어갔다.

J캐피탈 제안 전략 발표했다. 30분 준비한 자료. 파워포인트 20장.

본부장이 중간에 끊었다. “경쟁사 분석은?”

“경쟁사 4곳 예상됩니다. 각각 강점이…”

“우리가 이길 확률은?”

“50% 정도로 봅니다.”

“근거는?”

근거가 없다. 그냥 느낌이다. 말할 수 없다.

“고객사 관계, 기술 역량, 가격 경쟁력 종합해서…”

“구체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본부장이 한숨 쉬었다. “이렇게 애매하면 경영진한테 보고 못 해.”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목요일까지.”

나왔다. 기분이 안 좋다.

근데 본부장 입장도 이해한다. 임원회의에서 “50% 확률”이라고 보고할 순 없다. 경영진이 뭐라고 하겠냐.

문제는 나도 확실하지 않다는 거다. 정말 50%인지, 30%인지, 70%인지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계산이 안 된다.

오후에 다른 부서 부장들이랑 점심 먹었다. 다들 비슷한 얘기 했다.

“요즘 제안 정말 어렵더라.”

“변수가 너무 많아서 예측이 안 돼.”

“틀리면 책임 물어서 스트레스야.”

15년 차 베테랑 부장들이 다 힘들어한다. 조직 전체가 혼란스러워한다.

이건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인 것 같다. SI 시장 자체가 복잡해졌다. 예전 방식으로는 안 된다.

답을 찾아야 하는데

오늘은 수요일이다. 내일까지 다시 보고 준비해야 한다.

오전부터 팀원들이랑 회의실 들어가서 자료 다시 만들었다.

이번엔 접근을 바꿨다. 변수를 카테고리별로 묶었다.

기술 요인: 3가지 → 1순위 선택

고객사 요인: 5명 의사결정자 → 핵심 2명 집중

경쟁사 요인: 4곳 → 가장 위협적인 1곳 집중 분석

좀 더 명확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PM이 물었다. “이렇게 단순화해도 될까요? 나머지 변수들은요?”

“일단 핵심만 보자. 전부 다 보면 끝이 없어.”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근데 다른 방법도 없다.

저녁까지 자료 만들었다. 파워포인트 25장. 이전보다 구체적이다.

수주 확률: 60%

근거: 고객사 핵심 의사결정자 2명 중 1명과 관계 좋음. 기술 요구사항에 우리 강점 부합. 가격은 중간 수준 예상.

리스크: 경쟁사 L사가 최근 유사 프로젝트 수주. 낮은 가격으로 공격할 가능성.

대응 방안: 고객사 관계 강화. 기술 차별점 부각. 필요시 마진율 조정.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근데 여전히 불안하다.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맞는 방법일까.

15년 전엔 이렇게까지 안 했다. 지금은 이 정도 해도 불안하다.

시장이 변했다. 나도 변해야 한다. 근데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겠다.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온다. 팀이랑 같이 해도 어렵다.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배워야 한다.

근데 누구한테 배우지. SI 업계에 이런 거 가르쳐주는 사람 있나.


내일 보고하고 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 시작이다. 복잡함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