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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 10 Dec, 2025
수주 전략 수립, 혼자 하기엔 너무 복잡해졌다
수주 전략 수립, 혼자 하기엔 너무 복잡해졌다 15년 전엔 달랐다 오늘 오후 내내 제안 전략 회의였다. 머리 아프다. 15년 전, 내가 주임이던 시절엔 단순했다. 고객사 팀장이랑 친하면 됐다. 프로젝트 나온다고 하면 사양서 보고, 견적 뽑고, 제안서 쓰고. 그게 전부였다. 지금?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아침에 본부장이 불렀다. "이번 A은행 차세대, 어떻게 볼 거야?" 나도 모르겠다고 말할 순 없다. 15년차 부장인데. "클라우드 네이티브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고객사 내부 보안팀이 반대할 가능성이..." 본부장이 끊었다. "경쟁사는?" "B사가 최근 C은행 수주했습니다. 같은 아키텍처로 올 겁니다." "우리 차별점은?"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오후 회의는 6명이 모였다. 나, PM 2명, 아키텍트 1명, 기술영업 1명, 마케팅 1명. 예전엔 나랑 PM만 모여서 30분이면 끝났다. 지금은 2시간 회의해도 결론이 안 난다. PM이 물었다. "MSA 구조로 갈까요, 모놀리틱 전환할까요?" 아키텍트가 답했다. "고객사 운영 역량 고려하면 모놀리틱이 안전합니다. 하지만 RFP엔 MSA라고 나와 있어요." 기술영업이 끼어들었다. "경쟁사가 MSA로 제안하면 우린 탈락입니다." 마케팅이 추가했다. "시장 트렌드는 완전히 MSA입니다. 고객사 CIO도 관심 있다고 들었어요." 나는 메모만 했다. 뭐라고 결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아키텍트한테 물었다. "솔직히 뭐가 맞아?" "둘 다 맞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젠장. 이게 답이냐. 10년 전엔 기술은 PM이 알아서 했다. 나는 고객사 관계만 챙기면 됐다. 지금은 내가 기술도 알아야 한다. CIO가 "컨테이너 오케스트레이션 어떻게 볼래요?" 물어보는데 못 알아들으면 끝이다.고객사 정치는 더 복잡해졌다 회의 끝나고 고객사 IT 담당 상무한테 전화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상무님, 이번 프로젝트 어떻게 보세요?" "글쎄, 우리도 고민이야. CIO는 클라우드 하자는데, 보안팀은 반대하고. 운영팀은 인력 부족하다고 난리고." "메인은 누구세요?" "CIO 의중이 제일 중요하지. 근데 감사팀이 워낙 까다로워서..." 전화 끊고 한숨 나왔다. 예전엔 단순했다. IT 담당 임원 한 명만 챙기면 됐다. 결정권자가 명확했다. 지금은? CIO, CISO, CDO 따로 있다. 디지털전략본부, IT본부, 보안본부 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한쪽 편들면 다른 쪽이 반대한다. 지난달 D카드사 프로젝트가 그랬다. IT 본부장이랑 다 얘기 됐었다. 근데 디지털전략본부에서 "우리 의견 안 들었다"며 뒤집었다. 3개월 준비한 제안서가 날아갔다. 그 뒤로 나는 관련 부서 전부 돌아다닌다. 한 부서당 2~3번씩 만난다. 시간이 너무 든다. 오늘도 내일 E증권 보안팀장 만나기로 했다. 프로젝트 결정권자도 아니다. 근데 안 만나면 나중에 반대 의견 낸다. 그럼 프로젝트 터진다. 밤 9시에 F생명 디지털전략팀 차장이랑 저녁 약속 있다. 월요일 저녁인데. 가야 한다. 안 가면 경쟁사가 간다.경쟁사 분석도 일이 됐다 예전엔 경쟁사가 뻔했다. 대형 SI 3~4곳. 우리끼리 돌아가며 수주했다. 단가도 비슷했다. 지금은 경쟁사가 10곳이 넘는다. 대형 SI, 중형 SI, 외산 컨설팅펌, 클라우드 사업자, 스타트업까지. 각자 강점이 다르다. 단가도 천차만별이다. 지난주 G은행 프로젝트. 우리는 150억에 제안했다. 경쟁사 중 한 곳이 90억에 냈다. 물론 범위를 줄였겠지. 근데 고객사는 "왜 우리는 비싸냐"고 묻는다. 설명하기 어렵다. "범위가 다릅니다" 말해도 안 믿는다. "너네가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냐" 나온다.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한테 경쟁사 자료 받았다. A4 용지 30장이다. 각 경쟁사별 최근 수주 이력, 강점, 단가 전략, 주요 파트너사까지. 읽다가 머리 아팠다. 이거 다 외워야 하나. PM이 물어봤다. "H사가 이번에 AWS랑 파트너십 맺었다던데, 우린 어떡하죠?" 모르겠다. 우리도 AWS 파트너다. 근데 H사만큼 레퍼런스가 없다. 기술영업이 제안했다. "Azure로 제안하는 건 어떨까요? 경쟁 피하는 거죠." 그럼 고객사가 AWS 원하면? 또 탈락이다. 변수가 너무 많다. 하나 결정하면 다른 게 문제 생긴다. 기술 트렌드는 따라가기도 벅차다 저녁 먹고 집에 왔다. 11시다. 노트북 켜서 이메일 확인했다. 기술영업팀에서 보낸 자료다. "2025 금융권 IT 트렌드 보고서". PDF 80페이지. 읽어야 한다. 내일 본부장이 물어볼 수 있다. 5페이지 읽다가 포기했다. 모르는 단어 투성이다. "제너레이티브 AI 거버넌스", "온프레미스-클라우드 하이브리드 아키텍처", "제로 트러스트 보안". 10년 전엔 몰라도 됐다. "ERP 구축", "전자결재 시스템", "데이터웨어하우스". 이 정도만 알면 됐다. 지금은 매년 새로운 게 나온다. 작년엔 메타버스였다. 올해는 생성형 AI다. 내년엔 또 뭐가 나올까. 고객사 CIO들은 다 안다. 세미나 다니고, 스터디 하고, 외부 자문 받는다. 나한테 물어보면 대답해야 한다. 지난주 I저축은행 CIO가 물었다. "생성형 AI로 고객센터 자동화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다만 금융권 규제를..." 얼버무렸다. CIO가 날카롭게 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요?" 대답 못 했다. 모른다. 회의 끝나고 기술영업한테 물어봤다. 한 시간 설명 들었다. 이해는 했다. 근데 내일이면 까먹을 것 같다. 예전엔 영업은 관계였다. 지금은 영업도 기술이다. 기술 모르면 관계도 소용없다.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온다 주말이다. 오전 10시인데 침대에 누워 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골프 안 가?" "취소했어. 피곤해." "무슨 일 있어?" 설명하기 귀찮다. "그냥 일 복잡해." 사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J캐피탈 제안 전략 보고해야 한다. 본부장한테. 근데 아직 방향을 못 잡았다.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기술: 클라우드냐, 온프레미스냐. MSA냐, 모놀리틱이냐. 고객사: CIO 의중은 뭐냐. IT본부랑 디지털본부 관계는 어떠냐. 경쟁사: 누가 들어오냐. 단가는 얼마로 낼 것 같으냐. 마진: 우리 목표 마진율은 15%다. 근데 경쟁 치열하면 10% 밑으로 내려간다. 일정: 고객사는 6개월 안에 오픈하자는데 가능하냐. 팀 역량: 우리 PM들이 이 기술 스택 해본 적 있냐. 파트너사: 어느 밴더랑 같이 갈 거냐. 하나하나 따지면 답이 안 나온다. 결정하면 다른 게 걸린다. 10년 전엔 내가 결정했다. 지금은 결정을 못 하겠다. 변수가 너무 많다. 오후에 PM한테 전화했다. "K 팀장, 다음 주 화요일 보고 어떻게 하지?" "글쎄요. 저도 고민 중입니다." "기술적으로 뭐가 나아?" "그게... 고객사 요구사항이 애매해서요. 명확하지 않아요." "그럼 고객사 다시 물어봐야 하나?" "물어봐도 명확한 답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저번에도 그랬잖아요." 전화 끊었다. 답답하다. 혼자 하던 시절이 그립다. 복잡해도 내 머릿속에서 정리됐다. 지금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해서 커피 마셨다. 회의실에서 팀원들이랑 모였다. "이번 주 전략 회의 하자."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J캐피탈 프로젝트 변수들.기술 선택지 3가지 고객사 의사결정자 5명 경쟁사 4곳 파트너사 후보 3곳 마진율 시나리오 3가지변수만 18개다. 조합하면 수백 가지 경우의 수다. PM이 말했다. "이거 하나하나 따지면 한 달 걸립니다." 맞다. 근데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다. 아키텍트가 제안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떨까요?" "뭐가 우선이야?" "그게..." 말을 흐렸다. 다들 모른다. 나도 모른다. 예전엔 감으로 했다. 15년 경험으로 "이게 맞겠지" 결정했다. 틀릴 때도 있었지만 맞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감이 안 선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감이 무뎌졌다. 회의 2시간 하고 결론 못 냈다. "내일 다시 모이자." 저녁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생각했다. 이제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프로세스. 변수들을 구조화하고, 우선순위 매기고, 시나리오 분석하는 방법론.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배운 적이 없다. 15년간 감으로만 해왔다. 다른 부장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옆 팀 부장한테 물어봤다. "나도 힘들어. 요즘 프로젝트 너무 복잡해." "그럼 어떻게 해?" "그냥... 최선을 다해. 틀리면 틀린 거지 뭐." 위로가 안 됐다. 조직도 같이 힘들어한다 화요일 오전. 본부장 보고 들어갔다. J캐피탈 제안 전략 발표했다. 30분 준비한 자료. 파워포인트 20장. 본부장이 중간에 끊었다. "경쟁사 분석은?" "경쟁사 4곳 예상됩니다. 각각 강점이..." "우리가 이길 확률은?" "50% 정도로 봅니다." "근거는?" 근거가 없다. 그냥 느낌이다. 말할 수 없다. "고객사 관계, 기술 역량, 가격 경쟁력 종합해서..." "구체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본부장이 한숨 쉬었다. "이렇게 애매하면 경영진한테 보고 못 해."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목요일까지." 나왔다. 기분이 안 좋다. 근데 본부장 입장도 이해한다. 임원회의에서 "50% 확률"이라고 보고할 순 없다. 경영진이 뭐라고 하겠냐. 문제는 나도 확실하지 않다는 거다. 정말 50%인지, 30%인지, 70%인지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계산이 안 된다. 오후에 다른 부서 부장들이랑 점심 먹었다. 다들 비슷한 얘기 했다. "요즘 제안 정말 어렵더라." "변수가 너무 많아서 예측이 안 돼." "틀리면 책임 물어서 스트레스야." 15년 차 베테랑 부장들이 다 힘들어한다. 조직 전체가 혼란스러워한다. 이건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인 것 같다. SI 시장 자체가 복잡해졌다. 예전 방식으로는 안 된다. 답을 찾아야 하는데 오늘은 수요일이다. 내일까지 다시 보고 준비해야 한다. 오전부터 팀원들이랑 회의실 들어가서 자료 다시 만들었다. 이번엔 접근을 바꿨다. 변수를 카테고리별로 묶었다. 기술 요인: 3가지 → 1순위 선택 고객사 요인: 5명 의사결정자 → 핵심 2명 집중 경쟁사 요인: 4곳 → 가장 위협적인 1곳 집중 분석 좀 더 명확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PM이 물었다. "이렇게 단순화해도 될까요? 나머지 변수들은요?" "일단 핵심만 보자. 전부 다 보면 끝이 없어."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근데 다른 방법도 없다. 저녁까지 자료 만들었다. 파워포인트 25장. 이전보다 구체적이다. 수주 확률: 60% 근거: 고객사 핵심 의사결정자 2명 중 1명과 관계 좋음. 기술 요구사항에 우리 강점 부합. 가격은 중간 수준 예상. 리스크: 경쟁사 L사가 최근 유사 프로젝트 수주. 낮은 가격으로 공격할 가능성. 대응 방안: 고객사 관계 강화. 기술 차별점 부각. 필요시 마진율 조정.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근데 여전히 불안하다.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맞는 방법일까. 15년 전엔 이렇게까지 안 했다. 지금은 이 정도 해도 불안하다. 시장이 변했다. 나도 변해야 한다. 근데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겠다.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온다. 팀이랑 같이 해도 어렵다.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배워야 한다. 근데 누구한테 배우지. SI 업계에 이런 거 가르쳐주는 사람 있나.내일 보고하고 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 시작이다. 복잡함은 계속된다.
- 03 Dec, 2025
수주 후 프로젝트가 터졌다, 왜 영업이 책임을 져야 하나
수주 후 프로젝트가 터졌다, 왜 영업이 책임을 져야 하나 금요일 오후 3시, 전화벨 금요일 오후 3시. 고객사 CIO 전화. "부장님,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목소리가 차갑다. 심상치 않다. "납기 2주 미뤄진다고 들었는데, 우리 경영진 보고 어떻게 합니까?" 65억짜리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 6개월 전 수주했다. 당시 회사에서 상 받았다. 인센티브 2천만원 받았다. 지금 그게 터졌다. PM한테 전화 걸었다. 30분 전에. "영업 탓 아니잖아요. 현장이 문제죠." 현장 PM 말이다. 틀린 말 아니다. 하지만 고객사는 내게 전화한다. 왜? 나한테 사인 받았으니까.수주할 땐 영웅, 터지면 죄인 15년 이 바닥 있으면서 배운 거 하나. 수주하면 영웅. 터지면 죄인. 프로젝트 잘 돌아갈 땐 PM이 영웅이다. 경영진이 PM 칭찬한다. "프로젝트 관리 잘했어." 영업은? 수주만 했을 뿐. 프로젝트 터지면? PM은 "영업이 무리하게 수주했다"고 한다. 경영진은 "고객 관리 왜 이래?"라고 한다. 고객사는? "부장님이 약속했잖아요." 나 혼자 샌드위치다. 작년에도 있었다. 45억짜리 클라우드 전환. 수주할 때 PM이랑 범위 협의 다 했다. 아키텍트도 검토했다. "가능합니다" 했다. 6개월 뒤? 고객사가 요구사항 바꿨다. 당연히 바뀐다. 차세대는 다 그렇다. PM은? "이건 원래 범위 아니에요. 추가 예산 받아야죠." 고객사는? "부장님, 처음부터 이렇게 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결국 내가 내부 설득했다. 무상으로 해주기로. 마진 3억 날렸다. 누구 책임? 내 실적에서 빠졌다. 영업이 뭘 약속했길래 고객사가 화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장님이 4월 오픈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맞다. 그렇게 말했다. 제안서에도 썼다. 계약서에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정한 건 아니다. 제안 준비할 때 PM이랑 일정 짰다. PM이 "4월 가능합니다" 했다. 아키텍트도 검토했다. "버퍼 2주 있으니 괜찮습니다" 했다. 나는 그걸 고객한테 전달한 것뿐이다. 근데 지금? PM은 "현장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 뭐가 바뀌었나? "고객사 담당자가 요구사항을 계속 바꿔요." "개발자 두 명이 중도 퇴사했어요." "테스트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다 맞는 말이다. 현장은 전쟁터다. 변수 투성이다. 하지만 고객사 입장은? "그건 당신네 내부 사정이잖아요. 우리는 4월에 오픈해야 해요." 틀린 말 아니다. 결국 누가 조율하나? 영업이다. 나다.고객사는 영업을 본다 SI 프로젝트에서 고객사가 보는 건 하나다. 영업. PM? 고객사 실무자랑 얘기한다. 담당자 레벨이다. 아키텍트? 기술 검토할 때만 본다. 경영진? 계약할 때 한 번 본다. 근데 프로젝트 돌아가는 동안? CIO, IT 담당 임원이 누구 찾나? 영업이다. 나다. 왜? 계약서에 내 이름 있으니까. 수주할 때 내가 프레젠테이션 했으니까. 고객사 입장에선 나한테 산 거다. 그러니까 문제 생기면 나한테 전화한다. "부장님,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장님네 PM이 자꾸 추가 비용 얘기하는데, 이거 원래 범위 아닙니까?" "부장님, 우리 이번 달 실적 보고 들어가야 하는데 시스템 안 열리면 어떻게 합니까?" PM한테 전화 안 한다. 왜? PM은 실무자니까. 임원은 임원끼리 얘기한다. 근데 우리 쪽 임원은 현장 몰라. 그러니까 나한테 내려온다. "야, 고객사 무마시켜." 어떻게? 현장과 고객사 사이에서 프로젝트 터지면 내 역할은 하나다. 조율. 고객사는 화났다. 당연하다. 약속 어겼으니까. 현장은 빡쳤다. 이것도 당연하다. 야근에 주말 근무에 죽어나는데 고객사는 더 빨리하래. 경영진은? "빨리 해결해" 한다. 그 사이에 나 있다. 화요일 아침. 고객사 CIO한테 전화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일정 조정하겠습니다." "조정이요? 지금 2주 늦는다며?" "버퍼 기간 활용해서 최대한 단축하겠습니다." "부장님, 우리 이사회 보고 들어가야 합니다. 2주 늦으면 실적 차질 생겨요." "알고 있습니다. PM이랑 재논의해서 방안 드리겠습니다." 전화 끊고 PM한테 전화. "야, 2주 단축 방법 없어?" "없어요. 인력 더 투입해도 2주는 걸려요." "고객사 실적 영향 간다는데?" "그건 저희 문제 아니잖아요. 요구사항 바뀐 거 고객 책임이에요." 맞다. 기술적으론 맞다. 근데 정치적으론? 틀렸다. "고객사한테 그렇게 말할 거야?" "...당연히 아니죠." "그럼 내가 어떻게 보고해?" 결국 협의했다. 테스트 기간 1주 단축. 투입 인력 3명 증원. 주말 작업 2회. 마진? 1억 날렸다. 고객사한테 다시 전화. "CIO님, 1주로 단축 가능합니다. 주말 작업 투입하겠습니다." "2주 아니었어요?" "최대한 조정했습니다. 인력 추가 투입합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1주도 늦는 거잖아요?" "죄송합니다. 최선 다하겠습니다." 이게 내 일이다. 조율.왜 영업이 책임지나 여기서 질문 하나. 왜 영업이 책임지나? 기술 문제는 PM 책임 아닌가? 일정 관리는 PL 책임 아닌가? 요구사항 변경은 고객사 책임 아닌가? 다 맞다. 역할상으론 그렇다. 근데 프로젝트는 역할만으로 안 돌아간다. 고객사는 기술 몰라. 요구사항 바뀐 게 왜 문제인지 몰라. 개발자 퇴사가 왜 일정에 영향 주는지 몰라. 고객사가 아는 건 하나다. "4월에 오픈한다고 했잖아." 이걸 설명하는 게 누구 몫인가? PM? PM은 설명 못 한다. 기술 용어로 설명한다. 고객사 임원은 이해 못 한다. 경영진? 경영진은 현장 몰라. "빨리 해" 밖에 모른다. 결국 영업이다. 고객사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내부 상황을 정치적으로 포장해야 한다. "CIO님, 요구사항이 초기 대비 30% 증가했습니다. 이 부분 반영하느라 일정이 조정됐습니다." "그게 우리 잘못입니까? 당신네가 범위 명확히 안 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다만 현장에서 실사용자 의견 반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확장된 겁니다. 더 좋은 시스템 만들려고요." 포장이다. 근데 거짓말은 아니다. 이게 영업 역할이다. 책임? 기술적 책임은 없다. 근데 정치적 책임은 있다. 고객이 나한테 샀으니까. 15년 하면서 배운 것 SI 영업 15년 하면서 배운 게 있다. 프로젝트는 기술로만 안 된다. 기술 완벽해도 터진다. 요구사항 바뀐다. 인력 빠진다. 고객사 정치에 휘말린다. 그럼 누가 수습하나? 영업이다. 수주할 땐 PM이랑 같이 웃는다. "좋은 프로젝트 하자." 악수한다. 터지면? PM은 "영업이 무리하게 수주했다" 한다. 고객사는? "부장님이 약속 어겼다" 한다. 경영진은? "고객 관리 제대로 해" 한다. 나 혼자 욕먹는다. 근데 이게 SI 영업이다. 수주하면 인센티브 받는다. 터지면 책임진다. 트레이드오프다. 싫으면? 다른 일 해야지. 근데 15년 했다. 이제 다른 거 못 한다. 그냥 한다. 조율하고 설득하고 포장한다. 그게 내 일이다. 목요일 밤 10시 목요일 밤 10시. 고객사 CIO한테 문자 왔다. "부장님, 1주 지연 우리 팀에서 커버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음 페이즈 일정 맞춰주세요." 숨 쉬어진다. PM한테 전화. "고객사 OK 떨어졌어. 다음 페이즈 일정 칼같이 지켜." "...알겠습니다." 경영진한테 보고 메일 썼다. "고객사 협의 완료. 프로젝트 정상 진행." 답장 왔다. "수고했어." 수고? 2주 동안 밤샘하면서 조율한 건데. 뭐 어때. 터진 프로젝트 하나 살렸다. 이번 달 마진 1억 까였지만. 그래도 고객사랑 관계는 지켰다. 다음 프로젝트 받을 수 있다. 이게 SI 영업이다. 수주만 하는 게 아니다. 터진 거 수습하는 것까지가 영업이다. 15년 했으면서도 적응 안 된다. 근데 뭐 어쩌겠나. 내 밥줄이다. 금요일 아침. 출근했다. PM이랑 커피 마셨다. "고생했어요." "너도." 악수했다. 다음 프로젝트 또 같이 해야 한다. 터지면? 또 조율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책임은 역할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온다. 고객은 영업한테 샀다. 그러니까 영업이 책임진다. 기술적 정의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이다. 15년 배운 거 이거 하나다.
- 02 Dec, 2025
수십억 프로젝트 수주 실패 후 집에 가는 길, 무엇을 생각할까
강남역에서 분당으로, 6개월이 무너지는 시간 출근했다. 아침 9시. 김포공항 금융권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 최종 발표 날이다. 6개월간 준비했다. 아키텍트 3명, PM 2명, 컨설턴트 5명. 제안서만 800쪽. 마진율 12%. 예상 수주가 68억원. 오후 2시, CTO 면접. 우리 솔루션이 좋다. 충분히 좋다. 경쟁사는 단가가 53억원이래. 뭐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가격이다. 오후 4시 30분, 최종 수주 결정 내려진다고 했다.차 안이다. 강남역 빠져나와 분당 방향으로 간다. 오후 5시 45분. CTO한테서 전화 왔었다. "죄송하지만 경쟁사로 진행하기로..." 음. 그렇지. 핸들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린다. 신호 대기다. 옆에 누가 보는 건 아니니까 표정 가릴 필요는 없다.생각은 빠르게 돈다 뭐가 잘못됐지. CTO 니즈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만났다. 회의만 12번. 아내랑 골프 한 번 갔다. 스콘 차 마시면서 비즈니스 모델 설명했다. 아키텍트 의견도 좋았다. "기술 스택은 우리가 앞선다"고. 근데 뭐. 가격이다. 63억원 vs 53억원. 10억원 차이. 회사에서는 8% 이상 마진 못 내면 수주 승인 안 나는 거다. 12%로 제안했다. 경쟁사는 4% 마진도 감당할 수 있나. 그러면 손실 남다. 경쟁사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덤핑이다. 무조건 덤핑이다. 그런데 고객사는 신경 안 쓴다. 가격이 낮으면 된다. 차세대 시스템이 언제까지 운영될지 모르니까 당장 예산절감이 중요한 거다. 이 짓을 15년을 했다. 강남구청역 지나간다. 차 많다. 모두 퇴근길이다.자책은 빠르고, 분석은 더 빠르다 내가 뭘 놓쳤나. CTO는 기술 의사결정권이 있는 사람이다. 근데 CFO가 최종 결정권이다. CFO를 한 번도 안 만났다. 이게 실수다. 임원진 구조를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융사는 복잡하다. CTO가 좋다고 해도 CFO가 "가격 높네"라고 하면 끝이다. 경쟁사는 CFO를 만났나보다. CFO 담당 영업이 있나. 조사 안 했다. 경쟁사 인원 구성을 좀 더 자세히 봤어야 했다. 아 그리고 김포공항 금융 담당 이사.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차세대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라고 했었는데. 그 사람을 더 깊게 설득 못 했다. "생존"이면 기술이 중요한 거고. 기술이 중요하면 가격이 아니라 안정성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뭐 하는 건지 모르겠는 가격에서 진행하려니까. CEO가 결정했을 거다. 예산 압박이 있었나.분당 영통 IC 들어간다. 집까지 15분. 지난 6개월을 떠올린다. 1월. 기술 검증. 2월. 김포공항 금융 이사한테 첫 만남. 3월. CTO 미팅 3번. 4월. 제안서 첫 초안. 밤새 수정했다. PM이 뭐가 이렇냐고 물었다. 5월. 고객사 내부 검증. 우리 파트너사 컨설턴트 5명 투입했다. 아키텍트는 3주간 현장에서 설계 검증만 했다. 6월. 최종 제안. 프리젠테이션 리허설만 3번. 근데 뭐. 끝이다.회사에 어떻게 설명하지 내일 아침. 영업본부장 보고가 있다. "경쟁사에 밀렸습니다." 그게 다다. 이사는 뭐라고 할까. "마진율 때문에 손 뺐나?" "경쟁사 단가를 알고도 68억 제안했나?" "김포공항 금융 이사 라인은 충분히 공략했나?" 알겠다고 대답할 거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온다. "다음 분기 파이프라인 상황은?" 또 다른 제안서 준비해야 한다.근데 이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은행권 코어 뱅킹 시스템. 8개월 준비했다. 최종 단계에서 경쟁사에 밀렸다. 그때도 가격이었다. 2015년. 증권사 차세대 트레이딩 플랫폼. 기술은 우리가 맞았다. 근데 고객사 정치에 휘말렸다. CTO가 바뀌면서 경쟁사 선호로. 62억원 프로젝트. 그때도 실패했다. 그런데 그 다음엔? 2016년. 다른 은행 차세대 시스템. 그건 성공했다. 120억원. 18개월 프로젝트였다. 실패는 있고, 성공도 있다. 그게 영업이다. 근데 15년을 하면서 느끼는 건. 요즘은 성공할 확률이 예전보다 낮다는 거다. 2010년대는 차세대 시스템이 많았다. 은행들이 다 바꿨다. 레거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떼를 썼다. 2020년대는 뭔가 다르다. 클라우드다. DX다. AI다. 근데 예산은 줄었다. "굳이 새로 구축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늘었다. 그리고 경쟁사도 많아졌다. 해외 회사들도 들어왔다. 스타트업들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큰 SI 회사다. 5000명 직원. 근데 시장은 작아진다.분당 신분당선 역 근처다. 신호 또 기다린다. 아내한테 전화할까. 아니다. 아직 집 안 들어갔다. 집에서 말할 거다. "프로젝트 떨어졌어." 아내는 "그래, 다음 거 있지?"라고 할 거다. 딸한테는 안 말할 거다. 아들한테도. 근데 하루 이틀 지나면 느낄 거다. 아빠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다음 전략 근데 이건 어쨌든 예상했던 결과다. 가격이 10억 차이 나는데 이길 거 있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제안했나. 기회라고 생각했다. CTO가 우호적이었다. 기술 검증이 좋았다. "이번엔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이번엔 내가 피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다. 경쟁사의 가격 전략. 고객사의 예산 제약. 임원진 구조에서 CFO의 영향력. 이 세 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럼 다음부턴? CFO를 먼저 만나는 거다.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CFO에게 설득하는 거다. 기술이 아니라 "비용 효율성"으로. "초기 투자는 조금 많지만 장기 운영 비용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근데 이것도 이미 제안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럼? 그럼 경쟁사 가격 정보를 먼저 캐치하는 수밖에 없다. 고객사 담당자한테는 무섭게 물어볼 수 없다. 근데 우리 컨설턴트라면? "경쟁사 생각은 어떻게 봐?" 물어볼 수 있다.회사는 내일도 돈다 퇴근하고 생각할 시간은 여기까지. 집 들어가면 아내가 저녁 준비했을 거다. 딸은 숙제 한다고 할 거고. 아들은 게임 한다고 할 거다. 평범한 목요일 밤이다. 내일은 또 다른 미팅이다. 오전 10시. 증권사 임원진 미팅. "차세대 투자 시스템 검토 단계"라고 했다. 또 제안할 거다. 또 경쟁사 있을 거다. 15년은 이런 식이었다. 한 번 떨어지고, 한 번 따고. 근데 떨어지는 게 늘어난다. 시장이 줄어드니까.분당 집 도착했다. 오후 8시 20분. 차에서 내린다. 핸드폰을 본다. 카톡 6개. [영업본부장] "결과 어떻게 됐나" 아직 9시 보고 안 했는데 벌써 알았나. CTO가 이사한테 먼저 연락했을 거다. "죄송하지만 다른 업체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사가 우리 CEO한테 알렸을 거다. CEO가 부장한테 알렸을 거다. 부장이 나한테. 아직 나는 답 안 해도 다들 알고 있다.아파트 엘리베이터 탄다. 13층. 내일 아침 회의에서 뭐라고 할지 생각한다. "내부 검토 부족했습니다." "경쟁사 가격 정보 수집 미흡했습니다." "CFO 라인 미공략."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다음 분기에는 초기 접근 단계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더 정밀하게 파악하겠습니다." 이 한 마디면 된다.문 열고 들어선다. "아빠 왔어?" 아들 목소리다. "응. 아빠 왔다." 아내가 반찬 덜고 있다. "밥 뜨겠어?" "응." 밥 먹자. 내일 또 다른 제안 전략 짜야 한다.[IMAGE_4]차 안에서 생각한 것들은 다음날 실행된다. 근데 그 전에 밥은 먹어야 한다. 차세대 시스템 수주든 뭐든, 내일 아침도 9시에 출근해야 한다. 경쟁사에 진 이유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건 차세대 프로젝트다. 지금은 내일 고객사 미팅 자료만 정리하면 된다. SI 시장이 줄어드는 건 맞다. 근데 적어도 내일은 기회가 하나 더 있다. 그게 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