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Dec, 2025
수주 후 프로젝트가 터졌다, 왜 영업이 책임을 져야 하나
수주 후 프로젝트가 터졌다, 왜 영업이 책임을 져야 하나 금요일 오후 3시, 전화벨 금요일 오후 3시. 고객사 CIO 전화. "부장님,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목소리가 차갑다. 심상치 않다. "납기 2주 미뤄진다고 들었는데, 우리 경영진 보고 어떻게 합니까?" 65억짜리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 6개월 전 수주했다. 당시 회사에서 상 받았다. 인센티브 2천만원 받았다. 지금 그게 터졌다. PM한테 전화 걸었다. 30분 전에. "영업 탓 아니잖아요. 현장이 문제죠." 현장 PM 말이다. 틀린 말 아니다. 하지만 고객사는 내게 전화한다. 왜? 나한테 사인 받았으니까.수주할 땐 영웅, 터지면 죄인 15년 이 바닥 있으면서 배운 거 하나. 수주하면 영웅. 터지면 죄인. 프로젝트 잘 돌아갈 땐 PM이 영웅이다. 경영진이 PM 칭찬한다. "프로젝트 관리 잘했어." 영업은? 수주만 했을 뿐. 프로젝트 터지면? PM은 "영업이 무리하게 수주했다"고 한다. 경영진은 "고객 관리 왜 이래?"라고 한다. 고객사는? "부장님이 약속했잖아요." 나 혼자 샌드위치다. 작년에도 있었다. 45억짜리 클라우드 전환. 수주할 때 PM이랑 범위 협의 다 했다. 아키텍트도 검토했다. "가능합니다" 했다. 6개월 뒤? 고객사가 요구사항 바꿨다. 당연히 바뀐다. 차세대는 다 그렇다. PM은? "이건 원래 범위 아니에요. 추가 예산 받아야죠." 고객사는? "부장님, 처음부터 이렇게 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결국 내가 내부 설득했다. 무상으로 해주기로. 마진 3억 날렸다. 누구 책임? 내 실적에서 빠졌다. 영업이 뭘 약속했길래 고객사가 화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장님이 4월 오픈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맞다. 그렇게 말했다. 제안서에도 썼다. 계약서에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정한 건 아니다. 제안 준비할 때 PM이랑 일정 짰다. PM이 "4월 가능합니다" 했다. 아키텍트도 검토했다. "버퍼 2주 있으니 괜찮습니다" 했다. 나는 그걸 고객한테 전달한 것뿐이다. 근데 지금? PM은 "현장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 뭐가 바뀌었나? "고객사 담당자가 요구사항을 계속 바꿔요." "개발자 두 명이 중도 퇴사했어요." "테스트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다 맞는 말이다. 현장은 전쟁터다. 변수 투성이다. 하지만 고객사 입장은? "그건 당신네 내부 사정이잖아요. 우리는 4월에 오픈해야 해요." 틀린 말 아니다. 결국 누가 조율하나? 영업이다. 나다.고객사는 영업을 본다 SI 프로젝트에서 고객사가 보는 건 하나다. 영업. PM? 고객사 실무자랑 얘기한다. 담당자 레벨이다. 아키텍트? 기술 검토할 때만 본다. 경영진? 계약할 때 한 번 본다. 근데 프로젝트 돌아가는 동안? CIO, IT 담당 임원이 누구 찾나? 영업이다. 나다. 왜? 계약서에 내 이름 있으니까. 수주할 때 내가 프레젠테이션 했으니까. 고객사 입장에선 나한테 산 거다. 그러니까 문제 생기면 나한테 전화한다. "부장님,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장님네 PM이 자꾸 추가 비용 얘기하는데, 이거 원래 범위 아닙니까?" "부장님, 우리 이번 달 실적 보고 들어가야 하는데 시스템 안 열리면 어떻게 합니까?" PM한테 전화 안 한다. 왜? PM은 실무자니까. 임원은 임원끼리 얘기한다. 근데 우리 쪽 임원은 현장 몰라. 그러니까 나한테 내려온다. "야, 고객사 무마시켜." 어떻게? 현장과 고객사 사이에서 프로젝트 터지면 내 역할은 하나다. 조율. 고객사는 화났다. 당연하다. 약속 어겼으니까. 현장은 빡쳤다. 이것도 당연하다. 야근에 주말 근무에 죽어나는데 고객사는 더 빨리하래. 경영진은? "빨리 해결해" 한다. 그 사이에 나 있다. 화요일 아침. 고객사 CIO한테 전화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일정 조정하겠습니다." "조정이요? 지금 2주 늦는다며?" "버퍼 기간 활용해서 최대한 단축하겠습니다." "부장님, 우리 이사회 보고 들어가야 합니다. 2주 늦으면 실적 차질 생겨요." "알고 있습니다. PM이랑 재논의해서 방안 드리겠습니다." 전화 끊고 PM한테 전화. "야, 2주 단축 방법 없어?" "없어요. 인력 더 투입해도 2주는 걸려요." "고객사 실적 영향 간다는데?" "그건 저희 문제 아니잖아요. 요구사항 바뀐 거 고객 책임이에요." 맞다. 기술적으론 맞다. 근데 정치적으론? 틀렸다. "고객사한테 그렇게 말할 거야?" "...당연히 아니죠." "그럼 내가 어떻게 보고해?" 결국 협의했다. 테스트 기간 1주 단축. 투입 인력 3명 증원. 주말 작업 2회. 마진? 1억 날렸다. 고객사한테 다시 전화. "CIO님, 1주로 단축 가능합니다. 주말 작업 투입하겠습니다." "2주 아니었어요?" "최대한 조정했습니다. 인력 추가 투입합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1주도 늦는 거잖아요?" "죄송합니다. 최선 다하겠습니다." 이게 내 일이다. 조율.왜 영업이 책임지나 여기서 질문 하나. 왜 영업이 책임지나? 기술 문제는 PM 책임 아닌가? 일정 관리는 PL 책임 아닌가? 요구사항 변경은 고객사 책임 아닌가? 다 맞다. 역할상으론 그렇다. 근데 프로젝트는 역할만으로 안 돌아간다. 고객사는 기술 몰라. 요구사항 바뀐 게 왜 문제인지 몰라. 개발자 퇴사가 왜 일정에 영향 주는지 몰라. 고객사가 아는 건 하나다. "4월에 오픈한다고 했잖아." 이걸 설명하는 게 누구 몫인가? PM? PM은 설명 못 한다. 기술 용어로 설명한다. 고객사 임원은 이해 못 한다. 경영진? 경영진은 현장 몰라. "빨리 해" 밖에 모른다. 결국 영업이다. 고객사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내부 상황을 정치적으로 포장해야 한다. "CIO님, 요구사항이 초기 대비 30% 증가했습니다. 이 부분 반영하느라 일정이 조정됐습니다." "그게 우리 잘못입니까? 당신네가 범위 명확히 안 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다만 현장에서 실사용자 의견 반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확장된 겁니다. 더 좋은 시스템 만들려고요." 포장이다. 근데 거짓말은 아니다. 이게 영업 역할이다. 책임? 기술적 책임은 없다. 근데 정치적 책임은 있다. 고객이 나한테 샀으니까. 15년 하면서 배운 것 SI 영업 15년 하면서 배운 게 있다. 프로젝트는 기술로만 안 된다. 기술 완벽해도 터진다. 요구사항 바뀐다. 인력 빠진다. 고객사 정치에 휘말린다. 그럼 누가 수습하나? 영업이다. 수주할 땐 PM이랑 같이 웃는다. "좋은 프로젝트 하자." 악수한다. 터지면? PM은 "영업이 무리하게 수주했다" 한다. 고객사는? "부장님이 약속 어겼다" 한다. 경영진은? "고객 관리 제대로 해" 한다. 나 혼자 욕먹는다. 근데 이게 SI 영업이다. 수주하면 인센티브 받는다. 터지면 책임진다. 트레이드오프다. 싫으면? 다른 일 해야지. 근데 15년 했다. 이제 다른 거 못 한다. 그냥 한다. 조율하고 설득하고 포장한다. 그게 내 일이다. 목요일 밤 10시 목요일 밤 10시. 고객사 CIO한테 문자 왔다. "부장님, 1주 지연 우리 팀에서 커버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음 페이즈 일정 맞춰주세요." 숨 쉬어진다. PM한테 전화. "고객사 OK 떨어졌어. 다음 페이즈 일정 칼같이 지켜." "...알겠습니다." 경영진한테 보고 메일 썼다. "고객사 협의 완료. 프로젝트 정상 진행." 답장 왔다. "수고했어." 수고? 2주 동안 밤샘하면서 조율한 건데. 뭐 어때. 터진 프로젝트 하나 살렸다. 이번 달 마진 1억 까였지만. 그래도 고객사랑 관계는 지켰다. 다음 프로젝트 받을 수 있다. 이게 SI 영업이다. 수주만 하는 게 아니다. 터진 거 수습하는 것까지가 영업이다. 15년 했으면서도 적응 안 된다. 근데 뭐 어쩌겠나. 내 밥줄이다. 금요일 아침. 출근했다. PM이랑 커피 마셨다. "고생했어요." "너도." 악수했다. 다음 프로젝트 또 같이 해야 한다. 터지면? 또 조율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책임은 역할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온다. 고객은 영업한테 샀다. 그러니까 영업이 책임진다. 기술적 정의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이다. 15년 배운 거 이거 하나다.
- 03 Dec, 2025
금융권 임원 골프 라운드에서 들은 '타 회사 시스템 교체' 건, 이게 수주 기회다
일요일 오후, 골프장 일요일 오후 2시. 분당 CC 12번 홀. 금융권 임원 셋이랑 라운드. 평소 알던 K은행 IT본부장, 처음 보는 S증권 부사장, 우리 회사 상무. 날씨 좋다. 바람 적당하다. 스코어는 안 좋다.12번 홀 티샷 끝나고 카트 타고 가는데. S증권 부사장이 말했다. "요즘 A사 시스템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어." 귀가 번쩍 뜨였다. A사. 우리 경쟁사다. 시장 점유율 2위. 우리가 1위. "무슨 일인데요?" "작년에 구축한 트레이딩 시스템. 장 시작하면 자꾸 느려져. 한두 번이 아니야." K은행 본부장이 맞장구쳤다. "아, S증권도 그래? 우리도 A사 시스템 하나 있는데 비슷해. 성능 이슈 계속 나와." 카트에서 내렸다. 공 찾으러 가면서도 계속 들렸다. "고객 컴플레인 들어오면 답이 없어. A사 애들 부르면 '튜닝하겠다'만 반복해." "우리도 똑같아. 근본 해결은 안 되고." 세컨샷 치면서 생각했다. 이거다. S증권 트레이딩 시스템. 작년 A사가 수주했던 프로젝트. 규모 150억. 우리가 제안했다가 가격에서 밀렸다. 그때 우리 제안 단가가 A사보다 20% 높았다. 품질 차이 강조했지만 소용없었다. "가격이 정답"이라던 S증권 구매팀장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그 '싼 게 비지떡'이 증명되는 중이다. 라운드 끝나고 사우나 라운드 끝났다. 스코어 95. 평소보다 못 쳤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클럽하우스 사우나. 다들 맥주 마시면서 이야기 이어갔다. S증권 부사장이 계속 말했다. "시스템 교체 검토 중이야. 근데 예산이 문제지. 작년에 150억 쓰고 또 쓰자니." "그래도 안 되는 거 계속 붙들고 있을 순 없잖아." "그건 맞는데. 경영진 설득이 쉽지 않아." 우리 회사 상무가 슬쩍 말했다. "저희가 한번 검토해드릴까요? 전면 교체 말고 다른 방안도 있을 수 있죠." 부사장이 웃었다. "그래? 근데 공식적으론 아직 아무것도 없어. 내부 검토 단계야." "비공식 검토도 괜찮습니다. 레퍼런스나 기술 자료 정도만." "그 정도야 뭐. 월요일에 우리 팀장한테 연락해봐." 상무가 내 쪽 봤다. 눈빛으로 '네가 해'라고 말했다. 고개 끄덕였다.사우나 나와서 상무랑 잠깐 얘기했다. "S증권 트레이딩 시스템, 작년에 우리 제안서 아직 있죠?" "있지. 근데 그대로 쓰긴 어렵겠지. 1년 지났어." "제안 방향은 비슷하게 가되, 접근법을 바꿔야죠. 전면 교체보다 '단계적 전환'으로." "예산 부담 줄이자는 거지?" "네. 그리고 A사 시스템 문제점 분석 먼저 제안하고요. 무료로." 상무가 웃었다. "공짜 컨설팅으로 들어가서 발 들여놓는다?" "그게 제일 안전합니다. 공식 발주 나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자리 잡으면." "월요일 아침에 S증권 IT담당 팀장한테 전화해." "네." 집 가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골프 라운드가 이래서 중요하다. 공식 회의에선 절대 안 나오는 얘기가 나온다. '시스템 문제 있어요' 같은 말은 회의실에선 못 한다. 체면 때문에. 근데 골프장에선 다르다. 맥주 한잔 하면서 "야 우리 진짜 골치 아파"가 나온다. 그게 정보다. 수주 기회다. 월요일 아침 7시 월요일 아침 7시. 출근 전에 자료 먼저 찾았다. 작년 S증권 트레이딩 시스템 제안서. PDF 1200페이지. 당시 PM이랑 아키텍트랑 두 달 밤샘해서 만든 거다. 제안 단가 180억. A사가 150억으로 가져갔다. 당시 평가 점수 보니까 기술 부분은 우리가 높았다. 가격 점수에서 밀렸다. "기술이 좋아도 비싸면 안 된다"던 구매팀장. 이제 그 결과가 나왔다. 느린 시스템. 고객 컴플레인. 장애 대응 안 됨. 작년 제안서 훑어봤다. 핵심은 '성능 보장 아키텍처'였다.실시간 트레이딩 처리 속도 0.1초 이내 동시 접속 1만 건 처리 가능 장애 발생 시 자동 전환 시스템 A사 대비 30% 높은 처리 용량당시엔 "오버 스펙"이라고 했다. S증권 구매팀이. "그 정도까지 필요 없어요. A사 제안으로 충분해요." 이제 부족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8시 반. S증권 IT담당 차팀장한테 전화했다. "팀장님, 어제 부사장님이랑 라운드했는데요." "아, 들었어요. 시스템 얘기 나왔다며?" "네. 저희가 한번 검토 도와드리면 어떨까 해서요." "검토요?" "현재 시스템 성능 분석이요.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 방향 제시해드리는 거죠." "그거 돈 안 드나요?" "아뇨. 무상으로 해드립니다. 저희 레퍼런스 쌓는 거니까요." 전화기 너머로 잠깐 침묵. "그럼... 일단 만나보죠. 목요일 오전 어때요?" "좋습니다. 저희 아키텍트 한 명 데리고 갈게요." 전화 끊었다. 첫 발 들여놓았다.작전 회의 오전 10시. 우리 팀 회의실. 나, 상무, 김 아키텍트, 이 PM 모였다. "S증권 트레이딩 시스템 건입니다. 작년에 A사한테 뺏긴 거." 김 아키텍트가 고개 끄덕였다. "기억나요. 가격 때문에 졌죠." "맞아. 근데 지금 A사 시스템이 문제 생겼어. 성능 이슈." 상무가 말했다. "S증권 부사장이 직접 얘기했어. 시스템 교체 검토 중이라고." "공식 발주 나온 건가요?" "아니. 아직 내부 검토 단계야. 근데 우리가 먼저 들어가는 거지." 이 PM이 물었다. "어떻게 접근하시려고요?" 내가 설명했다. "1단계: 무상 성능 분석. A사 시스템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주는 거야." "2단계: 개선 방안 제시. 전면 교체 말고 단계적 전환 방안." "3단계: 예산 최소화 제안. 경영진 설득 도와주는 거지." 김 아키텍트가 웃었다. "공짜로 일해주면서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거 보여주는 거네요." "정확해. 그리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A사 시스템 약점 다 파악하고." "그럼 정식 제안 때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죠." 상무가 말했다. "목요일 오전 미팅. 김 아키텍트랑 같이 가. 이 PM은 제안 시나리오 3개 준비해." "전면 교체, 단계적 전환, 부분 개선. 세 가지 다." "예산 규모도 각각 다르게. 50억, 100억, 150억 버전." "목요일까지요?" "응. 미팅 가서 S증권 반응 보고 그 자리에서 제시할 수 있게." 회의 끝났다. 자리 돌아와서 생각했다. 이번엔 진짜 기회다. 작년엔 가격에서 졌다. 근데 이번엔 다르다. 상대가 실패한 프로젝트 위에서 시작하는 거다. 우리 제안이 '구원'처럼 보일 거다. 그리고 무료 분석으로 먼저 신뢰 쌓으면, 가격 협상도 유리하다. "비싸도 확실한 거 하자"는 분위기 만들 수 있다. 목요일 오전, S증권 본사 목요일 오전 10시. 여의도 S증권 본사 23층. 차팀장 회의실에서 만났다. 차팀장, 박과장, 우리 둘. "요즘 시스템이 어떤 상황인지 들어봐도 될까요?" 차팀장이 한숨 쉬었다. "장 시작하면 느려져요. 아침 9시 5분부터. 접속자 몰리면 응답속도가 3초까지 올라가요." "트레이딩 시스템에서 3초면 치명적이죠." "맞아요. 고객들 컴플레인 빗발쳐요. '체결이 안 됐어요', '주문 넣었는데 안 보여요'." 박과장이 자료 보여줬다. 장애 리포트 20건. 최근 3개월.9월 12일: 장 시작 후 5분간 시스템 느려짐 9월 18일: 동시 접속 7천 명 시점에 응답 지연 10월 3일: 주문 처리 지연으로 고객 손실 발생 10월 15일: 오전 장 시작 15분 후 시스템 다운"A사 대응은 어떻게 하나요?" "매번 '튜닝하겠다'고 해요. DB 쿼리 튜닝, 캐시 설정 조정, 서버 증설." "근데 근본 해결은 안 되고?" "네. 일주일 괜찮다가 또 터져요." 김 아키텍트가 물었다. "아키텍처 구조 자료 볼 수 있을까요?" "이거요." 박과장이 파일 하나 열었다. 시스템 구성도. 김 아키텍트가 5분 보더니 말했다. "문제 보이네요. WAS가 단일 구조예요. 부하 분산이 안 돼요." "단일 구조요?" "네. 접속자 많아지면 WAS 하나가 다 받아요. 병목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중화 구조로 바꿔야죠. 그리고 트레이딩 처리 로직을 별도 서버로 분리하고." 차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작년에 그쪽이 제안했던 거네요. 우리가 안 받아들인 거고." "이해합니다. 당시엔 예산 문제도 있으셨을 거고." "맞아요. 근데 이제 보니까..." 말을 안 해도 알았다. '싼 게 비지떡'이었다는 거. 내가 제안했다. "저희가 정밀 분석 한번 해드릴까요? 2주 정도 시간 주시면, 현재 시스템 문제점이랑 개선 방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비용은요?" "없습니다. 무상이에요." "왜요? 그냥 해주신다고요?" "저희 입장에선 레퍼런스죠. S증권 같은 대형 증권사 시스템 분석 경험. 나중에 다른 곳 제안할 때 쓸 수 있으니까요." 차팀장이 박과장 쳐다봤다. 박과장이 고개 끄덕였다. "좋습니다. 해보시죠. 근데 A사랑 충돌 안 하게 해주세요." "당연하죠. 저희는 분석만 하는 거니까. A사 업무 방해 안 합니다." "그럼 다음 주부터 시작할까요?" "네." 회의 끝나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김 아키텍트가 말했다. "들어갔네요." "응. 이제 2주 동안 A사 시스템 속속들이 파악하는 거지." "분석 보고서 나오면 S증권 입장에선 우리 말만 믿게 되겠네요." "그게 목표야." 2주 후, 분석 보고서 2주 지났다. 김 아키텍트팀이 분석 끝냈다. 보고서 120페이지. 핵심 내용: 현재 시스템 문제점WAS 단일 구조로 병목 발생 DB 커넥션 풀 설정 부적절 트레이딩 로직과 일반 로직 미분리 캐시 전략 부재 모니터링 시스템 미흡개선 방안 3가지 방안1: 부분 개선 (50억)WAS 이중화 DB 튜닝 캐시 서버 추가 예상 효과: 응답속도 50% 개선방안2: 단계적 전환 (100억)트레이딩 모듈 재구축 아키텍처 부분 변경 신규 서버 추가 예상 효과: 응답속도 80% 개선방안3: 전면 교체 (150억)시스템 전체 재구축 차세대 아키텍처 적용 클라우드 기반 전환 예상 효果: 완전한 성능 보장금요일 오후 S증권 본사. 보고 미팅. 차팀장, 박과장, 그리고 이번엔 부사장도 왔다. 골프장에서 만났던 그분. "보고서 잘 봤습니다. 정말 상세하네요." "2주 동안 시스템 로그 다 분석했습니다. 문제점이 명확합니다." 부사장이 물었다. "세 가지 방안 중에 추천은?" 김 아키텍트가 답했다. "방안2입니다. 단계적 전환." "이유는?" "방안1은 임시방편이에요. 당장은 나아지지만 1년 후 또 문제 생깁니다." "방안3은 예산 부담이 크고, 전면 중단 리스크 있고요." "방안2는 핵심 모듈만 먼저 바꾸는 겁니다. 리스크 적고, 효과는 확실하고." 부사장이 고개 끄덕였다. "100억이면... 내년 예산에 넣을 수 있겠네." 차팀장이 말했다. "부사장님, 이 방안대로 가면 경영진 보고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현재 시스템 문제점 데이터 이렇게 명확하면." "그리고 우리가 작년에 150억 썼다가 이 꼴 됐잖아. 100억으로 제대로 하는 게 맞아." 내가 말했다. "정식 제안 들어가도 될까요?" 부사장이 웃었다. "아직 공식은 아니야. 근데 내부 검토 자료로 이거 쓸게. 경영진 보고 끝나면 연락할게." "감사합니다." 미팅 끝나고 나왔다. 회사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무한테 전화했다. "상무님, 됐습니다. S증권 부사장이 경영진 보고한대요." "우리 방안대로?" "네. 방안2, 100억 단계적 전환." "좋아. 정식 제안 준비 들어가. 이번엔 못 뺏겨." "네." 한 달 후 한 달 지났다. S증권에서 연락 왔다. "정식 RFP 나갑니다. 다음 주 월요일." "경쟁 PT는 언제죠?" "2주 후. 근데... 경쟁사가 A사예요." 웃음 나왔다. A사가 또 제안한다고? 자기들이 만든 시스템 망가뜨려놓고, 또 고치겠다고 들어오는 거다. "괜찮습니다. 경쟁 환영이죠." PT 준비 2주 동안 했다. 작년 제안서 베이스로, 분석 보고서 내용 추가하고, 레퍼런스 업데이트하고. 가격은 105억으로 잡았다. 100억보다 5억 높다. 근데 정당화 가능한 범위. "우리는 분석 끝냈고, 정확히 어디 고쳐야 하는지 압니다" 포인트로 가는 거다. PT 당일. 우리가 먼저 발표. 40분.현재 시스템 문제점 (우리가 분석한 데이터) 개선 방안 (구체적 아키텍처) 일정 (12개월, 단계별) 예산 (105억, 항목별 상세) 레퍼런스 (유사 프로젝트 5건)S증권 평가위원들 표정이 좋았다. 고개 끄덕이고, 메모하고. A사 차례. 그들도 40분 발표. 근데 방향이 이상했다. "저희가 만든 시스템이라 누구보다 잘 압니다." "튜닝만 제대로 하면 충분히 개선됩니다." "예산 80억이면 가능합니다." 발표 끝나고 질의응답. 부사장이 물었다. "A사, 왜 처음부터 제대로 안 만들었어요?" A사 본부장이 당황했다. "그게... 당시 예산 범위 안에서 최선을..." "최선이 이거예요? 3개월간 장애 20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원인 파악했고..." "1년 동안 뭐 했어요? 원인 파악을?" 말문 막혔다. 차팅장이 물었다. "80억으로 어떻게 고치는데요? 아키텍처 바꾸려면 100억은 들잖아요." "저희는 아키텍처 안 바꿔도..." 김 아키텍트가 끼어들었다. (우리 편이 질문하는 척) "WAS 단일 구조 그대로 두고 어떻게 개선하시나요?" "그건... 튜닝으로..." "저희 분석 보고서 보셨죠? 구조적 문제예요. 튜닝으론 한계 있어요." A사 팀 아무 말 못 했다. 평가 끝났다. 복도 나오면서 상무가 말했다. "이겼어. 100%." "그렇죠?" "A사 저렇게 당하는 거 처음 봤다." 일주일 후. S증권에서 전화 왔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됐습니다." "저희죠?" "네. 축하합니다." 계약 계약 협상 2주 걸렸다. S증권 구매팀이 가격 깎으려 했다. 당연한 수순. "105억은 좀 비싼데요. 100억으로 안 될까요?" "항목별로 다 근거 있습니다. 5억 깎으면 인력 줄어요." "인력 줄면 어떻게 되는데요?" "일정 늘어납니다. 12개월이 15개월 되는 거죠." "그건 곤란한데..." "그럼 105억 그대로 가시죠." 결국 103억으로 합의. 2억 깎아줬다. 그 정도면 괜찮다. 계약서 쓰는 날. S증권 본사 회의실. 부사장이 악수하면서 말했다. "골프 라운드 한 게 잘한 일이네." 웃었다. "저도 그날 라운드 나가길 잘했어요." "이번엔 제대로 만들어줘요. 부탁해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 PM, 아키텍트 최고 인력 투입합니다." 계약 끝나고 회사 돌아왔다. 팀 전체 회의. "S증권 트레이딩 시스템, 103억 수주 확정됐습니다." 박수 나왔다. "작년에 뺏겼던 거 이번에 되찾았어요. 게다가 A사 완전히 밀어냈고." "프로젝트 시작은 내달 초. PM은 이 부장, 아키텍트는 김 부장." "일정 12개월. 타이트해요. 근데 할 수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 레퍼런스로 다른 증권사도 공략할 겁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회의 끝나고 자리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서 생각했다. 골프 라운드 한 번이 103억 프로젝트가 됐다. 그날 12번 홀에서 들은 "A사 시스템 골치 아파" 한마디. 거기서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전화, 무료 분석 제안, 2주간 파고들기, 보고서 작성, PT 준비, 계약. 3개월 걸렸다. SI 영업이 이거다. 정보 싸움이다. 누가 먼저 아느냐. 누가 먼저 접근하느냐. 누가 신뢰 쌓느냐. 회의실에서 나오는 정보는 다 필터링됐다. 공식 발표 나올 때쯤이면 이미 늦다. 진짜 정보는 골프장, 사우
- 03 Dec, 2025
경쟁사가 나보다 30% 싸게 들어왔을 때의 허탈감
금요일 오후 3시 회의실에 들어갔다. 고객사 IT본부장이 서류를 밀었다. "이거 봤어요?" 경쟁사 제안서다. 펼쳤다. 62억. 우리는 89억 썼다. 30% 차이다. 말이 안 나왔다. "스펙은 똑같던데요." 본부장이 말했다. 웃지 않았다.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했다. PM한테. "스펙 확인해. 경쟁사꺼." "확인했습니다. 거의 동일합니다." "거의?" "DB 이중화 빠졌고, 백업 주기가 주 1회예요. 우린 일 1회." "그게 27억 차이냐?" "...아닙니다." 끊었다. 토요일 오전 출근했다. 팀원 셋 불렀다. 화이트보드에 썼다. 62억 vs 89억. "어떻게 할 건데?" 아무도 말 안 했다. 결국 내가 말했다. "마진 깎자." "얼마요?" "15%에서 8%로." 팀원이 계산기 두드렸다. "그럼 74억입니다." "여전히 비싸네." "...네."경쟁사를 찾아봤다. 중견 SI다. 작년에 대형 프로젝트 하나 말아먹었다. 그래서 저렇게 싸게 내는 거다. 숨통이 막혔나 보다. 문제는 고객사는 그거 모른다는 거다. 62억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커피 마셨다. 네 번째다. 고객사 재방문 월요일 아침. 다시 갔다. 이번엔 CIO를 만났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노트북 펼쳤다. 준비한 자료다. "경쟁사 제안, 세 가지 리스크 있습니다." 첫째, DB 이중화 없으면 장애 시 복구 불가능. 둘째, 백업 주기 주 1회면 데이터 유실 리스크. 셋째, 해당 업체 작년 프로젝트 납기 2개월 지연. CIO가 물었다. "확인된 거예요?" "레퍼런스 체크 가능합니다." "가격은?" "74억까지 가능합니다." "여전히 비싸네요." "...네."CIO가 말했다. "이거 아세요? 경영진은 숫자만 봐요." "압니다." "62억이랑 74억. 12억 차이예요." "기술 가치는요?" "그거 설명하려면 보고서 20장 써야 해요. 경영진은 안 읽어요." 할 말이 없었다. 가격 재조정 회사 돌아와서 전무한테 보고했다. "74억도 안 먹힙니다." "얼마 원하는데?" "65억 정도요." 전무가 계산했다. "그럼 마진 3%야." "...네." "프로젝트 터지면?" "그럼 적자입니다." 전무가 담배 꺼냈다. 회의실인데. "이거 수주 못 하면 분기 실적 어떻게 돼?" "망합니다." "수주해서 터지면?" "그것도 망합니다." 전무가 웃었다. 웃긴 게 아니었다. "SI가 다 이 모양이야." 결국 결정했다. 65억. 마진 3%. 줄타기다. 재제안 수요일에 다시 들어갔다. CIO한테 65억 제시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경쟁사보다 비싸네요." "3억입니다. 기술 리스크 보험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CIO가 고민했다. 길게. "검토하겠습니다." 나왔다. 복도에서 경쟁사 영업 만났다. 마주쳤다. 눈인사했다. 서로 웃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도 마진 3%일 거다. 둘 다 못 먹고 사는 장사다. 금요일 저녁 전화 왔다. IT본부장이었다. "결정됐습니다." 심장 뛰었다. "우리 쪽입니다." "...감사합니다." "CIO가 결정했어요. 리스크 관리 때문에." "최선 다하겠습니다." 끊었다. 팀원들한테 말했다. "수주됐다." 박수 쳤다. 크게 안 쳤다. 다들 안다. 마진 3%라는 거. 프로젝트 시작하면 지옥이라는 거. 그래도 수주는 수주다. 회식 갔다. 고깃집. 고기 구우면서 생각했다. 15년 했는데 아직도 가격으로 싸운다. 기술 가치? 그런 거 없다. 결국 숫자 싸움이다. PM이 물었다. "부장님, 언제까지 이러실 거예요?" "임원 되기 전까진." "되면요?" "그땐 내가 전무 괴롭히겠지." 다들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월요일 아침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 준비했다. 65억짜리 프로젝트. 마진 3%. 실수 하나 못 한다. 일정 지연되면 페널티 물어야 한다. 범위 추가되면 마진 날아간다. 아키텍트한테 말했다. "이거 칼같이 해야 돼." "압니다." "범위 관리 철저히." "네." "고객사 요구사항 추가되면 바로 보고." "알겠습니다." 회의 끝나고 혼자 남았다. 창밖 봤다. 서울 도심이다. 저기 어딘가에 경쟁사 영업도 앉아 있겠지. 62억 제안하고 떨어진 거 분해하면서. 우린 65억에 수주했지만 마진 3%. 누가 이긴 건지 모르겠다. 허탈감의 정체 15년 했다. 대형 프로젝트 수십 개 했다. 그런데 아직도 가격으로 경쟁한다. '우리 기술력이', '우리 레퍼런스가' 말해도 소용없다. 결국 마지막은 가격이다. 62억이냐 65억이냐. 3억 차이로 수주가 갈린다. 그 3억이 우리 기술 가치 전부다. 허탈하다. 경쟁사가 30% 싸게 들어올 때마다 생각한다. SI 시장이 죽어간다고. 마진율 10%가 정상인데 3%로 따낸다. 이러다 다 죽는다. 그런데 안 따내면 당장 분기 실적이 없다. 그래서 따낸다. 3% 마진으로. 악순환이다. 아내한테 말했다. 저녁에. "오늘 대형 프로젝트 수주했어." "축하해요. 보너스 나와요?" "글쎄. 프로젝트 성공하면." "성공하겠죠?" "...그래야지." 말 안 했다. 마진 3%라는 거. 프로젝트 터질 확률 반반이라는 거. 그냥 웃었다.경쟁사 62억, 우리 65억. 3억 차이가 기술 가치 전부였다. 허탈하지만 수주는 수주다. 이제 마진 3%로 프로젝트 성공시켜야 한다.
- 02 Dec, 2025
수십억 프로젝트 수주 실패 후 집에 가는 길, 무엇을 생각할까
강남역에서 분당으로, 6개월이 무너지는 시간 출근했다. 아침 9시. 김포공항 금융권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 최종 발표 날이다. 6개월간 준비했다. 아키텍트 3명, PM 2명, 컨설턴트 5명. 제안서만 800쪽. 마진율 12%. 예상 수주가 68억원. 오후 2시, CTO 면접. 우리 솔루션이 좋다. 충분히 좋다. 경쟁사는 단가가 53억원이래. 뭐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가격이다. 오후 4시 30분, 최종 수주 결정 내려진다고 했다.차 안이다. 강남역 빠져나와 분당 방향으로 간다. 오후 5시 45분. CTO한테서 전화 왔었다. "죄송하지만 경쟁사로 진행하기로..." 음. 그렇지. 핸들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린다. 신호 대기다. 옆에 누가 보는 건 아니니까 표정 가릴 필요는 없다.생각은 빠르게 돈다 뭐가 잘못됐지. CTO 니즈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만났다. 회의만 12번. 아내랑 골프 한 번 갔다. 스콘 차 마시면서 비즈니스 모델 설명했다. 아키텍트 의견도 좋았다. "기술 스택은 우리가 앞선다"고. 근데 뭐. 가격이다. 63억원 vs 53억원. 10억원 차이. 회사에서는 8% 이상 마진 못 내면 수주 승인 안 나는 거다. 12%로 제안했다. 경쟁사는 4% 마진도 감당할 수 있나. 그러면 손실 남다. 경쟁사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덤핑이다. 무조건 덤핑이다. 그런데 고객사는 신경 안 쓴다. 가격이 낮으면 된다. 차세대 시스템이 언제까지 운영될지 모르니까 당장 예산절감이 중요한 거다. 이 짓을 15년을 했다. 강남구청역 지나간다. 차 많다. 모두 퇴근길이다.자책은 빠르고, 분석은 더 빠르다 내가 뭘 놓쳤나. CTO는 기술 의사결정권이 있는 사람이다. 근데 CFO가 최종 결정권이다. CFO를 한 번도 안 만났다. 이게 실수다. 임원진 구조를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융사는 복잡하다. CTO가 좋다고 해도 CFO가 "가격 높네"라고 하면 끝이다. 경쟁사는 CFO를 만났나보다. CFO 담당 영업이 있나. 조사 안 했다. 경쟁사 인원 구성을 좀 더 자세히 봤어야 했다. 아 그리고 김포공항 금융 담당 이사.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차세대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라고 했었는데. 그 사람을 더 깊게 설득 못 했다. "생존"이면 기술이 중요한 거고. 기술이 중요하면 가격이 아니라 안정성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뭐 하는 건지 모르겠는 가격에서 진행하려니까. CEO가 결정했을 거다. 예산 압박이 있었나.분당 영통 IC 들어간다. 집까지 15분. 지난 6개월을 떠올린다. 1월. 기술 검증. 2월. 김포공항 금융 이사한테 첫 만남. 3월. CTO 미팅 3번. 4월. 제안서 첫 초안. 밤새 수정했다. PM이 뭐가 이렇냐고 물었다. 5월. 고객사 내부 검증. 우리 파트너사 컨설턴트 5명 투입했다. 아키텍트는 3주간 현장에서 설계 검증만 했다. 6월. 최종 제안. 프리젠테이션 리허설만 3번. 근데 뭐. 끝이다.회사에 어떻게 설명하지 내일 아침. 영업본부장 보고가 있다. "경쟁사에 밀렸습니다." 그게 다다. 이사는 뭐라고 할까. "마진율 때문에 손 뺐나?" "경쟁사 단가를 알고도 68억 제안했나?" "김포공항 금융 이사 라인은 충분히 공략했나?" 알겠다고 대답할 거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온다. "다음 분기 파이프라인 상황은?" 또 다른 제안서 준비해야 한다.근데 이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은행권 코어 뱅킹 시스템. 8개월 준비했다. 최종 단계에서 경쟁사에 밀렸다. 그때도 가격이었다. 2015년. 증권사 차세대 트레이딩 플랫폼. 기술은 우리가 맞았다. 근데 고객사 정치에 휘말렸다. CTO가 바뀌면서 경쟁사 선호로. 62억원 프로젝트. 그때도 실패했다. 그런데 그 다음엔? 2016년. 다른 은행 차세대 시스템. 그건 성공했다. 120억원. 18개월 프로젝트였다. 실패는 있고, 성공도 있다. 그게 영업이다. 근데 15년을 하면서 느끼는 건. 요즘은 성공할 확률이 예전보다 낮다는 거다. 2010년대는 차세대 시스템이 많았다. 은행들이 다 바꿨다. 레거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떼를 썼다. 2020년대는 뭔가 다르다. 클라우드다. DX다. AI다. 근데 예산은 줄었다. "굳이 새로 구축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늘었다. 그리고 경쟁사도 많아졌다. 해외 회사들도 들어왔다. 스타트업들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큰 SI 회사다. 5000명 직원. 근데 시장은 작아진다.분당 신분당선 역 근처다. 신호 또 기다린다. 아내한테 전화할까. 아니다. 아직 집 안 들어갔다. 집에서 말할 거다. "프로젝트 떨어졌어." 아내는 "그래, 다음 거 있지?"라고 할 거다. 딸한테는 안 말할 거다. 아들한테도. 근데 하루 이틀 지나면 느낄 거다. 아빠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다음 전략 근데 이건 어쨌든 예상했던 결과다. 가격이 10억 차이 나는데 이길 거 있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제안했나. 기회라고 생각했다. CTO가 우호적이었다. 기술 검증이 좋았다. "이번엔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이번엔 내가 피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다. 경쟁사의 가격 전략. 고객사의 예산 제약. 임원진 구조에서 CFO의 영향력. 이 세 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럼 다음부턴? CFO를 먼저 만나는 거다.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CFO에게 설득하는 거다. 기술이 아니라 "비용 효율성"으로. "초기 투자는 조금 많지만 장기 운영 비용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근데 이것도 이미 제안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럼? 그럼 경쟁사 가격 정보를 먼저 캐치하는 수밖에 없다. 고객사 담당자한테는 무섭게 물어볼 수 없다. 근데 우리 컨설턴트라면? "경쟁사 생각은 어떻게 봐?" 물어볼 수 있다.회사는 내일도 돈다 퇴근하고 생각할 시간은 여기까지. 집 들어가면 아내가 저녁 준비했을 거다. 딸은 숙제 한다고 할 거고. 아들은 게임 한다고 할 거다. 평범한 목요일 밤이다. 내일은 또 다른 미팅이다. 오전 10시. 증권사 임원진 미팅. "차세대 투자 시스템 검토 단계"라고 했다. 또 제안할 거다. 또 경쟁사 있을 거다. 15년은 이런 식이었다. 한 번 떨어지고, 한 번 따고. 근데 떨어지는 게 늘어난다. 시장이 줄어드니까.분당 집 도착했다. 오후 8시 20분. 차에서 내린다. 핸드폰을 본다. 카톡 6개. [영업본부장] "결과 어떻게 됐나" 아직 9시 보고 안 했는데 벌써 알았나. CTO가 이사한테 먼저 연락했을 거다. "죄송하지만 다른 업체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사가 우리 CEO한테 알렸을 거다. CEO가 부장한테 알렸을 거다. 부장이 나한테. 아직 나는 답 안 해도 다들 알고 있다.아파트 엘리베이터 탄다. 13층. 내일 아침 회의에서 뭐라고 할지 생각한다. "내부 검토 부족했습니다." "경쟁사 가격 정보 수집 미흡했습니다." "CFO 라인 미공략."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다음 분기에는 초기 접근 단계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더 정밀하게 파악하겠습니다." 이 한 마디면 된다.문 열고 들어선다. "아빠 왔어?" 아들 목소리다. "응. 아빠 왔다." 아내가 반찬 덜고 있다. "밥 뜨겠어?" "응." 밥 먹자. 내일 또 다른 제안 전략 짜야 한다.[IMAGE_4]차 안에서 생각한 것들은 다음날 실행된다. 근데 그 전에 밥은 먹어야 한다. 차세대 시스템 수주든 뭐든, 내일 아침도 9시에 출근해야 한다. 경쟁사에 진 이유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건 차세대 프로젝트다. 지금은 내일 고객사 미팅 자료만 정리하면 된다. SI 시장이 줄어드는 건 맞다. 근데 적어도 내일은 기회가 하나 더 있다. 그게 영업이다.